평행선 달리는 勞·社···22일 임단협 결판 못 내면 23~25일 파업 돌입
조선업 발전전략 발표 後 “성과 내려는 산업은행의 무리한 매각 추진”

지난 5월 한국조선해양 설립을 위한 현대중공업 분할 안건에 반대하는 노조가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을 점거한 바 있다. 사진은 당시 한마음회관 앞에 정차돼 있던 현대중공업 버스. /사진=김도현 기자
지난 5월 한국조선해양 설립을 위한 현대중공업 분할 안건에 반대하는 노조가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 앞을 점거한 바 있다. 사진은 당시 한마음회관 앞에 정차돼 있던 현대중공업 버스. / 사진=김도현 기자

현대중공업이 결국 파업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평행선을 달리기 시작한 노사 양측은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서도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모양새다. 특히 사측이 노조의 요구안을 거절하면서 대우조선 인수에 따른 자금 여력을 지적해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촉발된 노사 대립이 계속 이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이번 인수를 강행하는 연유에 대해 궁금증을 드러내기도 한다. 노조의 거센 반발이 따를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을뿐더러, 경쟁국들의 견제 또한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경제논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인데, 대우조선 인수가 과연 어떤 실익을 가져다줄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2일 업계 등에 따르면, 이날 진행되는 임단협 21차 본교섭에 앞서 노조는 사측에 △기본급 12만3526원(6.66%) 인상 △성과급 250% 보장 △고용 안정 및 정년 보장 △원하청 총고용 보장 및 불공정거래 해소 △초과이익공유제 등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조는 이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간 파업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사측도 이를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처지다. 지난 17일 열린 20차 교섭 때도 임금인상을 제시하지 못했다. 회사 측은 업황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따른 자금 여력 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는 상태다. 결국 오늘 이뤄지는 교섭에서도 서로의 입장차만 내세운 채 파업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업체 관계자는 “기본급 6.66% 인상은 호황기에도 전례가 없던 일이며 성과급의 경우 회사 실적에 따라 이익이 났을 때 지급되는 것인데, 이를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보장하라는 요구를 어찌 선뜻 들어줄 수 있겠느냐”면서 “게다가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 요구는 의무조차 아닌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갈등을 두고 업계 내부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때부터 이어져 온 노사 갈등의 연장 성격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주체가 될 한국조선해양 설립을 위해 법인을 분할할 때부터 극렬히 저항해 온 노조가 사측과 대립각을 세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노조뿐 아니라 기업결합심사 과정에서 일본·유럽 등의 견제 또한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현대중공업이 인수를 강행한 배경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기업결합심사 대상국으로 지정된 중국·일본·EU(유럽연합) 등 6개국 중 단 한 곳이라도 반대 의사를 피력할 경우 인수가 불발된다. 중국의 경우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조선업 빅딜이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수월할 전망이지만, 한국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제보복을 이어가는 일본과 선주들이 밀집한 유럽에서의 난항이 예상된다. 노사의 갈등 국면 속에서 인수를 강행한 상태인 만큼, 기업결합심사 단계에서 좌초될 경우 향후 노사관계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대우조선해양의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조급증이 현대중공업이 강행을 선택하는 데 단초가 됐다고 평한다.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경남 거제시를 방문했다. 이후 4월 정부는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공표했다. 중소조선사는 물론 해운업계의 로드맵이 담긴 해당 전략에는 조선업 사업구조 개편안이 담겨 있었다. 대형 조선사들의 경우 인위적 개편이 아닌 자율적 논의에 따른 경쟁구도 완화 방안이 제시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정부 발표안의 가시적 성과를 유도하기 위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서두르게 된 것”이라고 진단하며 “당초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발표할 당시 삼성중공업이 참여하지 않은 까닭도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 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소식이 전해지면서 ‘밀실 합의’, ‘특혜’ 등의 꼬리표들이 따라붙은 바 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결국 정치적 논리에 따라 산업은행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모양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회복 중이라지만 여전히 침체기인 업황을 고려했을 때 경쟁사를 인수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현재의 사업 규모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상태여서 인수를 강행한다는 것은 밝혀지지 않은 이점이 상당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무리한 인수 추진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대우조선해양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매력적인 매물은 아니었다”면서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아무도 부담을 지려 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미래를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조선업계도 연구개발(R&D)을 바탕으로 한 기술 위주 산업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데, 중복 투자를 막고 사업 효율성을 꾀하기 위해 인수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