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부진에 리픽싱 공시 늘어···잠재 매물 증가에 기존 주주 가치 훼손 우려
CB·BW 지난해 코스닥서만 5조원 넘게 발행···“증시 회복시 전환 매물 다수 나올수도”

CB, BW 발행액은 코스닥 시장 기준. / 표=시사저널e.
CB, BW 발행액은 코스닥 시장 기준. / 표=시사저널e.

국내 자본시장에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메자닌 자산의 전환가액 하향 조정(refixing·리픽싱) 공시가 연이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전환가액 리픽싱은 메자닌 투자자를 보호하는 수단이지만 한편으로는 오버행(대량 잠재 매물) 이슈로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에 일각에선 지난해부터 메자닌 발행이 많았다는 점을 들어 향후 매물 폭탄에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5일까지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CB·BW의 전환가액 하향 조정 공시(코스피·코스닥·코넥스 상장기업 기준)는 1455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064건 보다 391건 증가한 것이다. 올해 하반기들어서도 581건으로 이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438건보다 많았다.

CB·BW의 리픽싱 공시 수가 늘어난 주요 배경에는 증시 하락세가 있다. 코스피는 올해 4월 장중 연고점인 2252.05을 기록한 이후 지난 8월 1891.81까지 내렸다. 이후 소폭 반등해 이달 15일 2068.17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올해 초보다는 좋지 못하다. 코스닥 지수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영향에 CB·BW 발행에 나섰던 기업들의 주가가 내리면서 리픽싱에 나선 것이다.

CB와 BW를 사들였던 투자자 입장에선 기대 수익률은 낮아졌지만 기업에 큰 문제가 없다면 안정성은 여전한 상태다. 주가가 전환 조정가를 넘어서지 못할 경우 만기까지 기다렸다가 자금을 상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상환 청구권이 있을 경우엔 일찍이 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만일 다시 주가가 상승한다면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주주 입장에선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는 리스크가 생긴다. 전환가가 하향될 수록 시장에 쏟아질 수 있는 물량이 늘어나는 까닭이다. 예컨대 전환가액이 주당 1만원인 전환사채 50억원어치를 투자한 경우 전환가액이 5000원으로 하락하면 50만주가 아닌 100만주의 신주가 발행되는 식이다. 실제 최근 한 상장사는 전환가액을 2045원에서 1204원으로 조정했는데 전환 가능 주식 수는 기존 440만978주에서 747만5083주로 증가했다. 

특히 리픽싱 이후 주가가 상승하더라도 이같은 잠재 물량은 그대로라는 점에서 기존 주주들의 부담은 여전하다. 주가가 올라도 리픽싱은 상향 조정되지 않는 탓이다. 다만 이같은 물량이 매물로 나오더라도 주가 상승을 일으킨 모멘텀이 크다면 매물을 소화할 수 있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오버행에 대한 리스크가 투자 심리를 악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일반 종목 대비 경계감 자체는 높다. 

이에 주식 전환사채 매물이 향후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CB와 BW 발행 자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의 CB와 BW 발행액은 2017년 약 3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약 5조7000억원으로 발행 규모가 확대된 상태다. 통상 CB발행 1년 이후 전환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잠재 물량이 그만큼 많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채권과 주식의 장점을 고루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모펀드 사이에서 CB와 BW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여기에 지난해 코스닥벤처펀드가 나오면서 기업들의 CB와 BW 발행이 늘었다”며 “전반적인 주가 하락 영향에 전환 수요는 크지 않겠지만 향후 증시가 회복될 경우 전환 매물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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