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제조물책임법상 면책사유 주장···‘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
법조계 일각서 “확대손해도 해당하지 않는다” 분석도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최근 ‘발사르탄’ 의약품을 제조했다는 아유로 정부로부터 구상금을 청구받은 제약사 중 상당수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구상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제약사들이 건보공단과 법정 공방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돼 향후 소송 전략이 주목된다.

건보공단은 최근 제약사들에게 고혈압치료제 성분인 ‘발사르탄’에서 발암 추정물질이 검출된 것과 관련, 건강보험 손실 구상금을 청구했다. 공단으로부터 청구서를 받은 제약사는 69곳이며, 구상금 규모는 총 20억2975만원에 이른다. 구상권은 채무를 대신 변제해준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해 채무 당사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구상금은 그 금액을 말한다.

당초 공단이 69개 제약사에 청구된 구상금을 납부하라고 요구한 기간은 10일까지다. 공단 측은 11일 현재 구상금을 미납한 제약사 숫자를 밝히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업계는 당초 예상한 20여곳을 넘어 30곳 이상의 제약사가 구상금을 납부하지 않았고, 이들 업체가 건보공단과 법정 공방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40곳에 육박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단은 이번주 초 납부 기한이 지나면 1차적으로 기한을 연장해 시간을 부여한 후 구상금 미납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공단 내부적으로도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구상금을 납부하지 않은 제약사들도 이미 3차례 대책회의를 갖고 로펌 선정 등 대응 방안을 준비한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 따르면 제약사들이 공단의 구상금 청구에 대응하는 법적 논리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제조물책임법상의 면책사유다. 

이번 소송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발사르탄 손해배상 근거로 제조물책임법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제조사의 제조물 및 안전성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단돼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제조물 결함 사유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것이 복지부의 판단이다. ‘제조업자는 제조물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조물책임법 제3조에 근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조물책임법에는 ‘제조업자가 해당 제조물을 공급한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손해배상 책임을 면해준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다.

실제 지난해 발사르탄 파동 당시 정부와 제약사 모두 발사르탄 원료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 검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다’라는 면책사유가 인정된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주장이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 국제 암연구소가 지정한 인체 발암 추정물질이다.

또 제조물책임법과 관련된 손해 유무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제조물책임법상의 손해는 ‘확대손해’다. 확대손해란 하자로 인한 직접적 1차 손해 외에 그 손해로 인해 발생된 2차 손해를 지칭한다. 

이번에 건보공단이 문제 삼는 손해는 유해성이 의심되는 처방 조제약을 대체하는 데서 발생한 비용이기 때문에 확대손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분석이다. 공단이 확대손해를 주장하려면, 예를 들어 발사르탄이 함유된 의약품을 복용해 다른 질환에 걸려, 이를 치료하는 데 추가로 들어간 비용이 있어야 한다. 현재로선 이 같은 사례가 없다고 제약업계는 밝히고 있다.   

복수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법리상으로는 이번 구상금 청구에 일부 허점이 있다고 한다”며 “조만간 소송을 대리할 로펌이 선정되면 공단과의 법정 공방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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