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권 행사, 불공정·차별적” 인식 상당해
2년 가까이 들여다보던 1조원대 금융사기 사건에서 중간모집책 A씨가 지난 9월 구속기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시점이 2017년 12월이니, 재판시작까지 사건은 2년 가까이 검찰에 머물러 있었다. 반복적인 검찰청 이첩이 원인이었다. 거쳐 간 검찰청만 5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을 바라보는 피해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유력 정치인과 변호사, 고위 경찰 공무원의 개입 의혹이 있는 사건인데, 검찰이 요지부동인 탓이다. 피해자들은 “전·현직 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과 검찰 등 법조계 배후세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데 수사가 시작되지도 않는다. 수많은 증거가 존재하는데도 검찰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 검찰권이 선별적으로 행사되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기자가 취재한 또 다른 사건에서도 검찰을 의심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전역 군인 단체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 전임 회장 B씨를 10여 차례 고소·고발한 사업가 C씨의 이야기다. 4성 장군 출신인 B씨는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했다.
C씨는 B씨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방대한 증거물을 검찰에 제출했는데도, 검찰이 수동적으로 수사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B씨와 그 주변인들, 대형 건설사 회장 등이 범죄를 공모한 것으로 보이는 녹취록까지 확보해 검찰에 제공했다. 하지만 검찰은 B씨에 대한 조사도 없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중에는 공소시효가 도과(徒過)한 사건들도 생겨나고 있다.
사실 B씨의 사건은 대검찰청에 처음 접수됐다가 일선 지청으로 이첩된 이른바 ‘큰 건’이었다.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왜 사건을 흐지부지 끝내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C씨는 “결정적 증거까지 제시했는데도 검찰은 피고소·고발인을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B씨의 배경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라고 했다.
하나고 입시비리 의혹을 폭로한 전경원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소장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한 달 전 전교조 사무실에서 만난 전 소장은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 결과에도 관련 고발사건을 불기소 처분한 검찰에 대해 혀를 찼다. 유력 언론사 사장 딸의 부정입학, 학교폭력을 저지른 유력 정치인 아들의 특혜 의혹 등이 있지만 검찰이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사건을 덮어버렸다는 게 전 소장의 주장이다.
항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진정까지 넣었다. 하지만 이 진정은 수차례 담당 검사가 교체되는 방식으로 1년 이상 ‘공전’하고 있다. 전 소장은 “특권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게 아닌지, 여기에서 검찰도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만난 상당수의 사람은 검찰권 행사가 공정하지 못하고 차별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매입 사건, 박근혜 대통령 7시간 산케이신문 사건, 김학의 성접대 사건, 장자연 리스트 사건 등 과거 ‘정치 검찰’ 비판이 일었던 사건들을 언급하며 불신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를 대대적으로 수사하는 검찰을 바라보면 상실감이 크다고 했다. ‘내 사건을 저렇게 수사했더라면’ ‘정치적인 사건만 검찰이 주목하는 것 같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다.
실제 리얼미터가 지난 6월 발표한 ‘2019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검찰의 신뢰도는 3.5%로 나타났다. 이는 경찰 2.2%, 국회 2.4%에 이어 세 번째로 가장 낮은 수치다.
출세를 갈망하는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더킹>에서는 ‘정치검사’로 묘사되는 한 중견 검사가 후배 검사를 비밀공간으로 데려 간 뒤 “사건은 김치처럼 묵혀뒀다가 맛있을 때 꺼내야 한다”며 조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서류더미에 쌓여 본분을 다하는 검사들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영화가 현실이 아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