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전부터 ‘서민형’과 동떨어진 자격요건으로 논란
정책금융이라면 보다 더 신중한 접근 필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다. 떠들썩한 소문이나 큰 기대에 비해 실속이 없거나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다. 지난주 신청이 마감된 ‘서민형 안심전환대출’도 딱 그런 모양새다. 74조원에 달하는 대출이 접수되면서 당초 공급 규모의 3배가 넘는 신청 폭주가 벌어졌지만 정작 정말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상품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금융당국이 4년 만에 야심 차게 내놓은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은 신청 접수 전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자격요건부터가 서민형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전환대출 대상은 9억원 이하의 1주택 소유자다. 우선 9억원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서민’이라고 할 수 있는지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정작 주택난에 시달리는 진짜 서민들은 안심전환대출 혜택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집을 살 돈이 없어 3%대의 금리로 꼬박꼬박 전세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무주택자들은 주택 소유자가 1%대 후반의 이자 혜택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안심전환대출 대상자 선정 개선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4건이나 올라왔다. 총 동의자수는 1만5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신청접수가 한창이던 16일에서 29일 사이에도 문제는 여전했다. 온라인 신청 과정에서 주택금융공사(주금공) 홈페이지가 수시로 접속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소비자들의 불편을 초래했다. 온라인을 통한 금융 업무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은 오프라인 창구인 은행으로 쏠렸다. 애먼 은행들은 실익도 없이 업무 가중에 시달리게 됐다. 은행 입장에선 주택담보대출이 주택금융공사 상품으로 전환되면서 대출이자 수익이 줄어드는 셈이기 때문이다.

29일자로 안심전환대출의 신청은 마감됐으나 이후에도 잡음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청자 수가 대거 몰리면서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택 가격 커트라인은 2억1000만원으로 대폭 내려갔기 때문이다. 서민형 기준 논란은 상당 부분 잦아들 것으로 보이나 금융당국의 엉터리 수요 예측으로 많은 신청자들이 희망고문만 당하게 됐다. 집값이 2억원 중반만 돼도 사실상 전환이 불가한 셈인데 그렇게 되면 수도권 거주자 대부분은 안심전환대출에서 탈락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결국 안심전환대출은 금융당국의 생색내기 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금융당국 입장에선 좋은 취지에서 내놓은 정책이 쓴소리를 들으니 여론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선의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안일한 선의는 선심성 정책 남발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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