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전경련회관 간담회 하루 만에 노동계에 사과
허창수 회장 청와대 만찬 참석 당시에도 하루 만에 “전경련 필요성 못 느낀다” 발표
이번 정권에서 전경련 패싱이 끝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듯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왼쪽)이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앞을 지나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편집=디자이너 조현경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왼쪽)이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앞을 지나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편집=디자이너 조현경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정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 간의 묘한 관계가 정권 내내 이어지고 있다. 전경련을 주요 경제정책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전경련 패싱’을 해소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이와 같은 관계가 그대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은 지난주 전경련회관에서 기업 인사들과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 계속되는 경제 악재를 극복하고자 정·재계가 머리를 맞대는 자리였다. 특히 그동안 정부의 ‘전경련 패싱’이 계속되던 가운데 여당 의원들이 대거 전경련을 방문했다는 점에서 재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전경련과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은 단 하루 만에 시기상조임이 드러났다. 이 부대표는 기업인들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댄 바로 다음날 노동계를 향해 “오해됐다면 정식 사과한다”며 사과 발언을 내놨다. 이 부대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노조 편이라는 말이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 노동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꿈이 아닌가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부분만 보도됐다”며 “혹시라도 한국노총과의 정책 연대를 깨지게 하는 방향으로 오해되지 않길 바란다”고 해명했다.

이와 더불어 이 부대표는 ▲전경련과의 간담회가 아니라 15개 기업과의 간담회였다는 점 ▲전경련을 탈퇴한 4대 기업(삼성, 현대차, SK, LG)도 참가했다는 점 ▲당 지도부 차원의 방문이 아닌 일부 의원의 방문일 뿐이라며 전경련에서의 간담회를 확대 해석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사실상 전경련 패싱이 끝난 것이라는 분석을 차단한 것이다.

정부·여당의 이 같은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청와대에서 있었던 필리프 벨기에 국왕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그때도 이번과 마찬가지로 전경련과 정부 사이에 협력 기류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는데 단 하루 만에 김의겸 당시 대변인이 상황을 정리했다. 당시 김 대변인은 “전경련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경총·대한상의와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을 만하면 정부·여당이 황급히 제동을 거는 듯한 상황이 연속되자 일각에선 정부와 전경련이 협력관계로 발전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전경련이 얼마나 열심히 혁신하고 정부에 협력하느냐 여부가 패싱 완화의 핵심 변수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여당의 이번 사과 일을 계기로 정부와 여당이 쉽게 전경련 패싱을 완화하기 힘든 사정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일본과의 무역갈등, 경제위기 등을 계기로 전경련과 정부가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냉온탕 구도가 계속 이어지면 적어도 현 정권 내에선 전경련이 과거 위상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다른 한 정계 인사는 “전경련이 혁신을 한다고 해도 그 외 정치적으로 고려할 요소들이 있는 이상 이번 정권에서 전경련 패싱이 끝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