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레이, LG와 對SK 연합전선 구축···“사실상 자존심 다툼” 비판도
연이은‘ ESS 화재’ 정부조사 결과에 불신 여론···“해외 수주 활동에 차질” 우려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배터리업계가 소란스럽다. 주요 업체들 간에 소송전이 확대되고, 한편에선 종결될 줄 알았던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연이은 화재로 관련 사업의 위축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정 공방에 휩싸인 업체들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ESS의 연이은 화재로 자칫 업계 전반에 침체 국면이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일본의 첨단 소재 기업 도레이인더스트리(도레이)가 최근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소를 제기한 LG화학과 일종의 연합전선을 구축한 셈이다. 도레이가 이번 소송전에 참여하게 된 까닭은 LG화학이 SK 측으로부터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특허의 공동특허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레이까지 참전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법적 공방은 지난 4월 촉발됐다. LG화학이 자사 전지사업본부 소속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기술 유출이 발생했다며 미국 법원에 고소하면서다. LG는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 Battery America) 본점이 소재한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제소하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셀·팩·샘플 등의 수입 전면금지를 요청했다.

이후 양사는 한·미 양국에서 서로를 겨냥한 제소를 반복했다. 제소 대상 특허도 점차 다변화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LG화학의 추가 제소 건을 두고 SK 측이 “2011년 12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법정 공방을 진행하다 LG가 패소하고, 향후 제소하지 않기로 한 특허까지 소를 제기했다”며 힐난하고 나서고, LG가 이에 “SK의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맞대응하면서 점차 과열 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전선이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관련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지극히 당연하나, 제 살 깎기 식 소송이 난무해 자칫 두 기업 모두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경쟁’으로 인식했던 이들마저 ‘과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여론마저 악화되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업체들이기에 자웅을 겨루는 것은 좋으나,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되면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날 우려가 크다”며 “제2의 반도체로 불리며 폭발적인 성장이 예견되는 배터리시장에서, 양측 모두가 거듭된 소송으로 상처를 입을 경우 국가경제 등에도 적지 않은 악역향을 끼칠 것”이라 경고했다.

SK이노베이션과의 대립 전선을 키우고 있는 LG화학 입장에서 ESS는 또 다른 근심거리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발생한 ESS 연속 화재로 사업 발주 등에서 큰 타격을 입은 업계는 이번 연속 화재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ESS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값싼 심야에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국내에서는 LG화학과 삼성SDI 등이 여기에 주력하고 있다.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은 기후 등 외부 요인 탓에 생산량이 일정치 않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ESS 설비의 중요성이 크다. 지난해부터 해당 ESS에서 연속적으로 화재가 발생하자 수개월여 동안 민간합동조사가 실시됐고, 지난 6월 정부는 “배터리 문제는 아니다”는 내용의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ESS 수주 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자연히 손실이 컸는데, 이번 연속 화재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름이 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더불어 정부의 안전대책이 나온 후 또 다시 화재가 발생해 해당 조사 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배터리 문제가 아니”라는 정부 측 설명도 신뢰할 수 없다는 여론이 대두되며 수주 활동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주요 업체들은 연이은 화재에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더불어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LG화학과 삼성SDI 측은 “해외에서 이 같은 대형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화재의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배터리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화재 원인이 조속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해외 수주에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연이어 발생한 화재만으로 민관합동조사 결과가 틀렸다고 해석해선 안 된다”며 “당시 발견하지 못한 요인이 화재 원인일 수도, 정부가 권고한 안전수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는 등 폭넓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빠르게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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