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기업 여건 이어지면서 기업 입장 적극 설명 행보 나서

지난 7월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사진=대한상의
지난 7월 17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 사진=대한상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정치권과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놓으며 ‘재계 미스터 쓴소리’로 등극했다. 정권 초기 정부와 재계의 무난한 가교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어려운 경제상황이 이어지면서 갈수록 기업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려는 모습이다.

지난 18일 박 회장은 ‘전국 상공회의소 회장 회의’ 기자간담회에서 “현 경제상황을 보면 총력대응을 해도 헤쳐나갈 수 있을지 걱정인데 정치권이 경제 이슈에 대해 제대로 논의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며 “경제는 버려진 자식”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통상임금,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도 등이 시대에 맞춰가는 변화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기업들에 단기간 내에 원가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제엔 여러 숫자가 있고 긍정적인 면을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을 볼 수도 있다”며 “상당히 우려가 강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경제논의가 실종된 정치권 상황과 기업들을 압박하는 정책들에 대해 작심 비판한 것이다.

박 회장의 쓴소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하반기 경제정책과 관련해 혁신 성장에 대해 좀 더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조치가 있었으면 한다”고 주문했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의 만남 땐 “일본 기업은 특히 약속을 대단히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다. 한일 기업들이 약속과 거래를 상호 간에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하는 등 최근 들어 기업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재계 단체 회장으로서 기업들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허나 최근 들어 그 수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 또 정권초기 때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 때문에 특히 더 주목받고 있다.

대한상의는 문 정권이 출범함과 동시에 재계 대표 단체로 주가를 올렸다. 정부가 기존 대기업들을 대변하는 단체였던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으면서 기업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떠올랐다.

박용만 회장 및 대한상의의 정권 초기 모습은 적극적으로 기업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보단 일단 정부와 기업들 사이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한 재계 인사는 “대한상의는 기업들의 입장을 열심히 정부에 대변해주는 역할과 기업들에게 정부의 정책기조에 잘 협조하자고 독려하는 역할이 있는데, 후자 역할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매년 열리는 대한상의의 대표적 행사 중 하나인 ‘제주포럼’에서의 발언을 봐도 확실히 과거와 달라진 기조를 엿볼 수 있다. 2017년 제주포럼 당시 박 회장은 “반드시 바꿔야 할 잘못된 관행들은 스스로 솔선해서 바로 잡아가고, 일자리 창출과 상생 협력 등 우리 사회가 바라는 일에는 앞장서 나가야 한다”며 “​이익집단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보단 변화요구에 화답하는 행보를 보이자”고 말했다.

다음은 그로부터 2년 후 열린 제주포럼에서의 박 회장 개회사 일부분이다. “기업들이 소재의 국산화 등 미래 대응을 위한 R&D와 공장 설립 등을 추진하려면 복잡한 인허가나 예상치 못한 장애에 부딪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이)특단의 대책을 세운다는 생각으로 기업들의 대응책에 전폭적으로 협조해주길 부탁한다.”

재계에선 이 같은 박 회장 발언 수위의 변화가 현 경제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전쟁, 52시간제도 등 경영 환경변화 속에서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는 시점에 적극적으로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이 들어선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경제여건이 어려워지면서 박 회장의 발언도 달라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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