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정부, 첨단산업국가 조성 사업 추진···신규 발주 대거 쏟아질 듯
빌 살만 왕세자 방한 이후 양국 간 경제계 협력 교류 돈독
“신도시 개발 경험 많은 국내 건설사 우위 가능성 높아”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존 석유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경제구조를 바꾸는 ‘사우디 비전 2030’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도시 건설 등 다양한 인프라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신규 발주에 대한 건설업계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건설업계에 ‘제2의 기회의 땅’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우디는 석유산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국가 개혁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800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첨단산업국가를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600조원이 투입되는 신도시 조성 사업은 신규 발주를 대거 쏟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선 신도시 개발 등 경험이 많은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정부의 외교적인 지원도 건설업계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사우디, 첨단산업국가 조성 사업 박차···정부, 외교적 교류 통해 경제계 협력 의지 다져

26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최대 수주처 중 한 곳이었지만 미국·유럽의 기술력과 중국의 저가입찰 공세 등에 밀려 건설사들이 예전만큼 재미를 보지 못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국 간 외교적인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교류의 물꼬를 튼 시기는 지난 6월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첫 방한부터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왕위 계승 서열 1위로, 연로한 부친을 대신해 사실상 사우디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사우디의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다. 청와대의 초청으로 방한한 빈 살만 왕세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계와의 교류·협력 등을 약속했다. 사우디 왕위 계승자가 방한한 것은 1998년 압둘라 왕세자 이후 21년 만이다.

청와대가 빌 살만 모시기에 손수 나선 이유는 사우디의 막대한 시장성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는 2016년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4차 산업혁명 등 미래 준비를 목표로 ‘사우디 비전 2030’을 선포했다. 사우디를 ‘석유 국가’에서 첨단산업국가로 변신시키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빌 살만 왕세자는 이 계획에 무려 7000억달러(837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다양한 인프라 사업이 진행되는 만큼 건설업계 입장에선 사우디를 예의주시해 왔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외교적 지원에 나서면서 업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정부는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이후에도 외교적 교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이브라힘 알아사프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양국 간 실질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강 장관은 사우디의 비전 2030 실현에 있어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임을 강조했다. 양국 장관은 6월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이후 한국·사우디 관계가 에너지·건설 분야를 넘어 정보통신기술·보건·교육 및 방위산업 등 다방면으로 발전하고 있음에 만족을 표명했다.

◇600조원 투입해 신도시 조성···“신도시 개발 경험 많은 국내 건설사 유리”

건설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프로젝트는 ‘중동판 실리콘밸리’를 목표로 5000억달러(598조원)가 투입되는 ‘네옴 신도시 사업’이다. 사우디는 네옴이라는 지역에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고 스포츠, 문화산업, 럭셔리 관광, 재생에너지, 바이오테크, 로봇공학, 첨단제조업을 포함하는 거대한 경제자유구역을 조성할 예정이다. 신도시 규모는 서울 면적의 44배에 달한다. 아울러 100억달러(12조원)이 투입되는 ‘홍해 개발 프로젝트’도 발주가 예정돼 있다. 홍해 프로젝트는 홍해 상에 있는 22개 섬에 공항, 요트 정박지, 주택단지, 레크리에이션 시설, 14개의 호텔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외에도 에너지원을 신재생으로 전환하는 ‘에너지 트랜스포메이션’, ‘키디야(Qiddiya)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 건설’ 등이 추진 중이다.

업계에선 신도시 개발 등 인프라 사업의 경험이 많은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이에 사우디에 진출해 있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림산업 등이 새 먹거리 확보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우디에서 들려오는 수주 낭보도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다. 현대건설의 경우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조원대의 초대형 플랜트 공사를 따낸 바 있다. 대림산업도 사우디 아람코와 석유화학 프로젝트에서 협력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나설 정도로 사우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5일 삼성물산이 건설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도심 지하철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계열사의 해외 건설 현장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가 첨단기술이 접목된 스마트시티를 조성하는 만큼, ICT(삼성전자)와 건설(삼성물산·삼성엔지니어링) 등에 모두 강점이 있는 삼성이 새로운 사업과 시장 창출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업계에선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 피폭 사태가 사우디 수주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발생한 유가 상승이 향후 사우디의 추가 발주로 이어져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중동 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유가 상승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며 “석유 판매 수익이 올라가는 만큼 자금을 확보한 사우디의 사업 발주는 활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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