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 발표···사실상 정년연장 대응책 꺼내
고령자 고용연장·재취업 활성화···정년 65세 위해 20개 정책과제 구성

/ 사진=셔터스톡
/ 사진=셔터스톡

심각한 저출산·고령화를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고령층 고용 지속 방안을 내놓으면서 정년 논의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정년 연장 카드를 꺼내 경제 지속성장에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인데,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상황에서 세대 간 일자리 갈등, 민간기업 부담, 노인연령기준 상향 등 곳곳에 난제가 산적해있다. 정부의 목표인 ‘65세 정년’까지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는 14개 부처·10개 국책연구기관이 5개월 동안 연구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 일부를 지난 18일 발표했다. 현행 국가공무원 법령 제74조에 의거해 우리나라는 정년이 60세로 규정돼 있다. 우선 정부는 고령자의 고용연장과 재취업 활성화에 방점을 찍었다. 목표인 ‘정년 65세’ 추진 시점은 단기·중기·장기과제로 나눠 총 20개 정책과제로 구성했다.

20대 정책과제는 ▲외국인 인력 확대 ▲교원 감축 ▲병력 감축 및 여군 확대 ▲고령친화 신산업 창출 ▲고령자 주택 건축기준 강화 ▲주택연금 가입 조건 완화 및 퇴직연금 개선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핵심 대책 등이 포함됐다.

먼저 정부는 경제 지속성장에 초점을 맞춰 고령자 계속 고용을 활성화시킬 방침이다. 고령화 계속 고용은 정년 연장과 맞물리는 개념으로, 사실상 정부가 정년연장에 대한 대응책을 우선적으로 꺼낸 것이다. 정년 연장이 법제화가 필요한 만큼, 정부는 기업들이 정년이 지난 60세 이상 고령자를 채용, 늘어나는 고령자로 줄어드는 15~64세 생산연령 인구를 대체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부의 대책은 인구구조 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자칫 이 제도가 현존하는 노동시장 격차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심각한데, 정년 연장의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으로 쏠릴 수 있어서다.

실제 2017년 법정 정년인 60세가 민간기업까지 의무화됐지만 공무원과 공공부문·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와 달리, 고용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은 정년까지 근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세대 간 일자리 갈등 골도 깊어질 수 있다. 고령층 계속 고용으로 청년층 신규 채용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기준연령을 높이는 방안도 과제로 남았다. 기재부는 인구대책을 발표하면서 “노인복지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노인기준연령의 장기적 조정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노인기준연령이 오르면 기초연금, 국민연금, 장기요양보험 등 노인복지 혜택 연령도 덩달아 오른다. 현행 국민연금 의무가입 나이는 60세로, 정년연장 논의와 맞물려 오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노인복지 혜택은 줄고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는 더 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해 해당 연령층의 반발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장년층과 청년층의 일자리 본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청년실업과 정년연장을 동일선상에서 보면 안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수출·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경기 국면도 하락세로 전환되고 있어 정년연장시 민간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정년연장 논의를 본격화하는 우리나라 외에도 일부 해외국가도 정년을 연장하는 과정에 있다. 일본은 지난 2013년 정년 연령을 65세로 늘렸다. 저출산, 고령화가 계속돼 6년전 정년을 65세로 변경했다. 독일과 스페인도 현재 65세인 정년을 점진적으로 67세로 늘리는 과정에 있다. 싱가포르도 최근 정년퇴직 연령을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끌어올려 현재 62세인 정년을 2022년 63세로 늘리고 2030년까지 65세로 연장할 예정이다.

정년 제도가 아예 없는 국가도 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정년이 없다. 기존 70세였던 규정을 지난 1986년 폐지했다. 영국도 당초 65세였던 정년을 지난 2011년 폐지했다. 사실상 정년이 없는 셈이다.

유럽국가에서는 새로운 법안을 마련할 때 정년을 갑자기 늘리지 않고, 독일과 스페인처럼 해당 연령대에 있는 계층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유예기간을 둔다.

다만 기재부는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방안도 23년 걸렸다. 인구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정년 문제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60세 정년이 불과 3년 전인 2016년 시행된 만큼, 다시 정년 연장을 논의하기엔 다소 이른감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일단 중기 과제로 2022년부터 계속 고용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면서 기업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을 도입하면 결국 또 좋은 직장으로 분류되는 곳에만 근로자의 정년이 보장될 것”이라며 “정년 연장 논의와 함께 노동유연화 개혁,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정년 연장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정년 연장이 노동시장 격차를 늘리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임금구조 개편이나 불평등한 원·하청 구조개선 등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특정 집단에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기업이 고령근로자 고용 부담으로 청년 신규고용을 줄이거나 계약직 고용을 늘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임금피크제나 직무에 따른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도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