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은 뒷전’인 의원들 개인 부각 위한 경연의 장으로 전락한 국정감사
이슈 부합 기업총수·CEO 불러내 호통···내년 선거철 겨냥해 더 기승부릴 듯

개인적으로 정치인과 연예인은 전혀 다를 것 같지만 생존방식에 있어선 일정 수준 궤를 같이 한다고 본다.

가장 불명예스럽게 퇴진했지만, 여전히 열성적인 팬덤을 이끌고 있는 박근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입원 소식에 서울 강남성모병원 앞은 본래 의미를 잃어버린 태극기와 충성·사랑 등 갖은 메시지들이 담긴 플랜카드로 가득하다.

대중이 받아들이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슈의 중심에 선 이들의 생명력이 길다는 점도 어느 정도 공통적이다. 편협한 지식으로 말도 안 되는 지적을 하다 웃음거리가 된 한 의원은 일순간 전 국민이 알게 된 유명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사업 실패로 막대한 빚을 지게 된 한 연예인이 부채극복의 아이콘으로 부상해 인기를 얻기도 한다.

국회의원 수가 300명이다. 일부 유관 직종을 제외하면, 유권자들 중 20명의 국회의원 이름을 대는 것이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매년 선거철을 앞두고 유명인들에 대한 정치권의 러브콜이 쏟아진다. 대중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이점이다. 그래서일까. 얼굴 한 번 알리기 위한 의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반복되는 장이 있다. 바로 국정감사다.

특히 올해 국정감사의 경우 내년 총선 직전에 치러지는 만큼, 비례대표로 당선돼 지역구에서의 재선이 절실한 초선의원들과 당선을 자신하지 못해 본인의 활약을 노출하고자 하는 의원들이 ‘큰 활약’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연신 호통을 치고 목소리를 높여 뉴스에 소개되기를 간곡히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미끼’가 필요하다.

국정감사의 미끼는 경제인들이다. 대기업 총수들을 자리에 앉혀놓고, 다른 국감장보다 관심을 고조시킨 뒤 상대를 향해 고성을 쏟아낸다. 답변에 머뭇거리면 “발언하라”고 채근하고, 반박은 고사하고 해명이라도 할라치면 “국민의 대표가 묻는 질문에 태도가 그게 무엇이냐”고 꼬집는다. 정작 본인이 대변하고 있다는 국민의 실망감에 대한 공감은 없다. 애초부터 본인을 재고하기 위함이었으니.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요량이다. 헌법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법률이 정의하는 국정의 개념은 ‘의회의 입법작용뿐 아니라 행정·사법을 포함하는 국가작용 전반’이다. 개별 기업은 국정감사의 대상 밖이다. 물론, 정부기관을 감시·견제하다 기업과의 접점이 있어 이를 지적하기 위해 증인·참고인 명목으로 총수·CEO 등을 소환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응당 국민이 주어진 권한을 사용해야 함이 옳다.

단, 전제한 대로 필요에 따라 그래야 한다. 청문회 면면을 보면 이슈에 부합하려는 태도가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대로 그럴 수 있다. 지역구 유권자들도 보게 될 TV에서 부각되고 눈에 띄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하는 욕구는 정치인의 기본적인 자세이기에. 하지만 근본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근본을 놓쳐선 안 된다. 정치인 개인의 이슈편승을 목적으로 한 총수 불러내기로, 정작 부각돼야 할 국정의 숱한 안건들이 묻힐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 개인의 욕구보다, 국정감사 본래 기능이 우선시 돼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다. 지난해 국정감사 최고의 이슈는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였다. 내년에 선거가 예정돼 있어 전년보다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측되지만, 올해도 비슷한 방식의 마케팅은 국감장에서 곧잘 눈에 띌 전망이다.

부디 정치인들이 국정감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길 권고한다. 약간의 연결고리를 이용해 출석을 요구하고 이에 편승해 본인을 부각하는데 이용하질 않길 바란다. 국정·기업·경제 등 호통 치는 정치인을 제외한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 권한을 부여한 국민이 바라는 모습 또한 아니다. 알려지고 싶다면, 공공에 해를 끼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길 바란다.

시청률은 낮지만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 한 편이 있다. JTBC 금토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주인공이다. 영화 ‘스물’, ‘극한직업’ 등의 메가폰을 잡은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연출작이다. 감독 특유의 차진 대사가 20·30대의 높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세대 특성 상 본방송 대신 다른 플랫폼을 통한 시청이 많아, 시청률은 저조하지만 드라마 주제곡이 출시 1개월 여만에 역주행에 성공하는 등 인기몰이만큼은 확실한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는 PPL(간접광고)을 녹여내는 데도 기발한 방법을 썼다. 극중 PPL업무를 담당하는 배역을 등장시켜, 자연스럽게 이를 표현한다. 극의 흐름을 저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색다른 재미까지 준다.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다 열이 난다며 공기정화 기능을 갖춘 에어컨 전원을 켜며 세세한 설명까지 곁들이는 아침드라마들과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정치인들에 이 드라마를 권한다. 국감에 총수들을 불러내 호통을 치는 구시대적이며, 공감조차 얻지 못하는 세속적 마케팅 방식에서 탈피하고 신선한 마케팅 방식을 연구했으면 싶은 바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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