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소송戰, 삼성·LG TV 신경戰 확대에 중재자 필요성 대두
정주영·이병철 등 ‘큰 어른’ 사라진 재계···세대교체 속 아쉬움 토로 목소리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배터리 특허를 두고 LG그룹과 SK그룹이, TV 화면 기술력을 놓고 삼성그룹과 LG그룹 등이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복된 사업을 영위하며 국내를 넘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업체들 간 신경전으로 볼 수도 있으나, 점차 비방과 비난, 법정분쟁으로 확전을 거듭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계에 어른이 없어 반목이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창업주 3·4세들이 속속 총수자리에 오르면서 재계 내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 같은 갈등 상황에서 과거와 다른 흐름이 전개됨에 따른 아쉬움의 표출이다. 특히 국내 기업 간 갈등을 틈타 다른 국가의 경쟁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어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중복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끼리 사업을 하다 보면, 경쟁심이 불씨가 돼 신경전은 물론이고 때론 법정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며 “다만 과거의 경우 분쟁이 발생하면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기업들의 총수들이 직접 중재에 나서 화해의 장이 마련되고, 갈등의 당사자인 총수들 간 대승적 합의를 통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 1세대 총수들이 비슷한 시기 회사 외연을 키우고, 마찬가지로 해외 사업에 속속 발을 내디디며 동지의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부친의 성공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경영수업을 받았던 2세들까진 이 같은 공감대가 있었는데, 점차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 같은 문화를 전파해야 할 재계의 어른들도 없어진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재계 내에서 이 같은 문화가 점차 사라진 배경에는 총수들의 세대교체 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있다. 우선 꼽히는 것은 창업주 3·4세들의 특징이다. 선대 회장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와 각종 국가 행사 등을 통한 친목 및 교류가 잦았다. 하지만 최근 총수 자리에 오른 이들은 내부보다는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열을 올린다.

모 그룹 관계자는 “자원도 없고 내수 시장마저 크지 않은 한국의 기업 대다수가 마찬가지겠지만, 오로지 기술력만을 바탕으로 원료 및 원자재를 들여와 완성된 제품을 해외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결국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한 기업들이 오늘날 재계 상위에 랭크되고 오랜 역사를 이어가듯 오늘날 총수의 중요한 역할이 바로 해외 인맥 개척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누군가 나서 중재를 시도한다 하더라도 총수들이 바빠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1년 중 상당 기간 출장지에 머무르고, 국내에서도 집무실을 지키기보다 곳곳의 사업장을 둘러보고 갖은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총수들 사이에 만남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부연했다.

경제단체들의 위상이 하락했다는 점도 화해 무드 조성이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최종현 SK그룹 명예회장 등 한국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됐던 인물들이 회장직을 역임했던 전경련은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단체였으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후부터 과거와 같은 위용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는 인사로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꼽힌다. 이들은 각각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연맹의 회장으로, 재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때론 정부 및 정치권, 사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줄어들고, 재계 내부의 지지도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주요 그룹 간 갈등은 점차 확대되는 양상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법적 분쟁은 미국 현지 법원에서 소송이 제기된 이래 국내에서까지 맞소송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간 TV기술력 신경전도 해당 업체들이 유투브 채널 등을 통해 경쟁 제품을 깎아내리고 자사 제품을 부각하는 방식의 공방을 지속 중이다.

각 그룹 총수들 간 담판을 통해 화해 무드를 조성할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국정농단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잦은 출장과 더불어 개인적인 이혼소송에 휘말렸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최근 사장단 워크숍에서 ‘변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독해진 LG’ 행보를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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