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확대 중인 LG그룹···對 SK ‘배터리 소송전’, 對 삼성 ‘TV기술력 신경전’
1등 강조 ‘권영수의 입김’ 해석 대두···과거 구본준 영향력 버금간다는 의견도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LG그룹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투력을 키우고 다툼을 마다않는 행보를 보이는 까닭에서다. 그간 인화(人和)를 강조해 온 경영방식과 다소 거리감 있는 행보로 평가된다. 재계 안팎에서는 변화의 주역으로 권영수 LG 부회장을 꼽는 분위기다.

지난해 5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타계한 뒤 LG그룹은 조속히 구광모 회장 체제로의 전환을 꾀했다. 동시에 임원인사를 통해 LG유플러스 대표직을 수행하던 권영수 부회장이 구광모 회장과 함께 그룹 지주사 LG의 대표직에 발탁됐다. LG의 변화는 ‘구광모-권영수 체제’ 아래 지난 1년 간 곳곳에서 관측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SK그룹을 상대로 전기차 배터리를 둘러싸고 전면전을 선포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엔 삼성그룹과 TV를 사이에 둔 치열한 공방전을 개시했다. 전면에는 각각 해당 사업을 영위하는 LG화학·LG전자 등 계열사가 나선 상황이지만, 그룹 기조가 달라졌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더불어 기조의 변화를 이끈 인물로 권 부회장을 지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권 부회장이 변화의 핵심으로 지목되게 된 배경에는 ‘1등 DNA’를 강조해 온 승부사적 경영스타일이 한 몫 했다. 2015년 부회장 승진과 더불어 LG유플러스 대표직에 선임된 그는 이동통신업계 3위 LG유플러스의 1등 도약을 위한 혁신을 강조하고 내부 구성원들을 담금질했다. 그런 그가 구 회장과 더불어 그룹 지주사 대표직에 오르면서, 그룹 전반에 1등 DNA의 확산을 이끌었다는 평이 나오게 됐다.

2·3등 사업의 약진을 도모하고 확고한 1위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권 부회장의 경영방식이, 구 회장이 그를 첫 경영파트너로 선택한 이유인 동시에 향후 LG그룹의 변화될 정체성의 청사진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실제 그룹 내 일각에서는 선대 회장 재임시절 그룹 내에서 막강한 2인자로 군림해 온 구본준 전 LG 부회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전언도 있다.

한 LG그룹 관계자는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당시, 국내 재계 총수들과 회동을 가졌는데, 이 때 구광모 회장이 아닌 권영수 부회장이 대신 참석했다”며 “공개석상에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구 회장 스타일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권 부회장이 그룹 내에서 갖는 위상을 잘 보여준 대목”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CEO(최고경영자)가 참석한 사례는 극히 일부였다. 5대그룹 중에는 유일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나란히 참석했다. 주요 그룹들 중 경영진이 참석한 사례는 해외 출장 중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대신한 우기홍 대한항공 부사장 정도였다.

구광모-권영수 체제 하에서의 LG그룹의 기조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타사와 마찰이 빚어질 때마다 ‘좋은 게 좋은거다’로 일관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의 모습을 놓곤 심지어 ‘독기를 품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놓고 다투는 국내기업들이 적지 않은 만큼, 그간 갖은 신경전과 공방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재계라는 틀 안에서 갈등이 빚어진 각 그룹 총수들 간 중재의 장이 마련되고 이 자리에서 합의와 담판이 이뤄지기도 했는데, 최근 LG그룹의 행보를 보면 중재의 장이 마련돼도 화해에 응할지 의문”이라 고 시사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다양한 회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요즘 LG그룹의 행보는 확실히 선대 회장들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면서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구광모 회장이겠지만, 적어도 권영수 부회장이 구 회장의 의사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LG 측은 최근 일련의 행보와 관련해 “그룹 차원의 대응은 아니다”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배터리 소송전과 관련해 LG화학이, TV 기술력과 관련해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LG전자가 각각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1957년생으로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경영학)·카이스트대학원(산업공학) 등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평가받는 권 부회장은 1979년 LG전자 기획팀에 입사하며 ‘LG맨’으로서의 이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룹 내에서 ‘재무통’으로 꼽히는 그는 LG전자를 비롯해 LG디스플레이·LG화학·LG유플러스 등을 거치며 요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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