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증 교부 촉구···노동3권 보장 요구
근로기준법 vs 노동조합법···보험사 부담 가중 불가피

보험사 상품 판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보험설계사들이 정식 노동조합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나섰다. 수수료 삭감이나 일방적 계약 파기 등 부당행위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가 노조 지위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보험설계사 노조가 정식 지위를 인정받을 경우 수수료 인상 등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보험사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다만 대리운전 노동자, 방과 후 교사 등 다른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 아직 설립신고증 교부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보험설계사 노조의 지위 인정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동자 아닌 개인사업자 지위 ‘특수고용노동자’…“노동3권 보장돼야”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산하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이하 설계사 노조)은 18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설립신고식을 열고 고용노동부의 설립신고증 교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설계사 노조에 따르면 전국 40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들은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보험설계사, 인터넷 설치기사, 화물차 운전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사용자와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도급·위탁계약 등을 맺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노동자로서 노조를 설립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 왔다.

노조가 없기 때문에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사의 일방적인 수수료 삭감, 부당 해촉 등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으며 지난 2017년 6월 결성된 설계사노조도 법외노조로만 활동했기 때문에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지 못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정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촛불혁명 이후 새 정권이 들어설 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온전히 보전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인권위원회도 노동3권 보장 입법을 권고한 바 있다”며 “하지만 택배 노동자, 학습지 교사들은 인정하면서 대리기사, 방과 후 교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지금도 노동 현장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고 비정규직 못지않게 신음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의 설립신고 승인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철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 대책회의 의장 역시 “정권이 바뀌고 국회가 바뀔 때마다 정치인들은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항상 ‘모르겠다’ ‘어렵다’는 얘기만 반복한다”며 “사업장에 가면 특수고용노동자를 다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한순간에 씹다버린 껌 취급당하는 것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노총도 특수고용노동자 대책회의를 중심으로 보험설계사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오세중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 위원장/사진=최기원PD
오세중 전국보험설계사노동조합 위원장/사진=최기원 PD

◇설립신고 승인하면 보험사 부담 불가피…“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해당 안 돼”

보험설계사들이 직접 피해 사례를 밝히는 증언도 이어졌다. 한 보험사 대리점으로부터 부당 해촉을 당했다고 밝힌 김소영 설계사는 “2017년에 대구 지사와 위촉계약을 맺고 일을 하던 도중 다른 설계사의 사고 등으로 사무실 운영이 힘들어졌고 수수료 지급이 연체되기 시작했다”며 “이후 본사는 더 낮은 수수료로 계약할 것을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자 강제 해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촉을 당하며 제대로 연체된 수수료를 받지 못했고 대리점의 귀책사유로 법인을 옮길 경우 보유계약을 이관시켜준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며 “고용노동부에 민원을 넣었지만 ‘해줄 것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호소했다.

또한 그는 “개인이 회사와 소송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설계사들에게는 목소리를 내고 보호받을 권리가 절실하다”며 “좀 더 안정된 여건에서 일을 하면 고객들에게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보험설계사 노조가 설립신고 승인을 받게된다면 보험사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체행동권과 교섭권이 법적으로 보장되면 설계사들의 수수료 인상, 4대보험 요구 등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기 때문이다. 업황 악화, 새 국제회계기준 적용에 이어 보험사에 새로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계사들의 처우 개선에는 동의하지만 보험설계사들을 근로자로 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지표에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느냐’ ‘고정급이 정해져 있느냐’ 등이 포함돼 있는데 보험설계사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무 형태가 명백히 다른 보험설계사들이 일반 근로자들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라고 밝혔다.

오세중 설계사노조 위원장은 “최근 대법원 판결 등을 보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이 되지 않더라도 노동조합법에 따라 노조를 할 권리는 보장받는 흐름”이라며 “4대보험이나 정규직화를 바로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지만 만약 (설립신고 승인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존처럼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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