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양사 경쟁 확전 양상

17일 LG트윈타워에서 진행된 '8K 및 OLED 기술설명회'에 LG전자 TV와 삼성전자 TV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사진=윤시지 기자
17일 LG트윈타워에서 진행된 '8K 및 OLED 기술설명회'에 삼성전자 TV와 LG전자 TV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 사진=윤시지 기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 기술 공방이 초고해상도 8K 화질을 둘러싸고 다시 불붙었다. 이번엔 LG전자가 3년 전 삼성전자로부터 지적받았던 국제 표준규격을 근거 삼아 삼성전자의 8K TV 기술을 반격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일각에선 예년과 다른 LG전자의 강도 높은 공격을 두고 구광모 LG그룹 회장 취임 이후 전사적인 성과주의 기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내년을 기점으로 열리는 8K 시장은 물론, 향후 차기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양사의 TV 마케팅 격전은 지속될 전망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의 가전을 담당하는 HE사업부는 최근 8K 기술설명회를 위해 수 개월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이달 초 독일에서 열린 가전박람회(IFA2019)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삼성전자의 8K QLED TV가 국제 규격에 미달한다고 지적한 데 이어 지난 17일 서울 LG 트윈타워에서 자사 제품과 비교 시연을 하며 재차 비판을 이어갔다.

LG전자는 3년 전 삼성전자가 LG전자를 공격했던 국제 표준규격을 근거 삼아 거꾸로 삼성전자의 최신 8K TV를 비판했다. 지난 2016년 삼성전자는 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ICDM)의 기본 문서를 근거로 LG전자의 RGBW 방식 TV의 화질선명도(CM)가 60%에 불과하며, CM값이 95%에 달하는 자사 제품에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LG전자가 삼성전자의 2019년형 QLED 8K TV 75인치 모델의 가로 CM값이 12%에 불과하다며 ‘진짜 8K TV’가 아니라고 반격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LCD 패널의 한계인 시야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필름을 채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시야각 이슈가 없는 자사의 OLED 디스플레이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했다.  

이번 8K 공방전을 LG전자 사업부 차원에서 오랜 기간 강력히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에선 조직 내 '구광모 효과'가 가시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전사적으로 수익성이 저조한 사업을 매각하고 권영수 부회장 등 재무통 인사를 경영진에 배치하며 조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배터리 분야에선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과 맞소송에 나서면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는 점도 그동안 '인화'를 중시해 왔던 조직 분위기가 성과주의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더한다.

일각에선 이번 LG전자의 기술설명회에 대해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에 대한 지원사격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LG디스플레이는 올 상반기 LCD 가격 하락세로 인해 5000억원대 누적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달 중 희망퇴직을 단행할 정도로 경영환경이 악화됐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택한 OLED 패널은 수요는 좋지만 LCD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LG디스플레이의 저조한 사업 수익성 때문에 세트업체인 LG전자가 도운 것으로도 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TV의 경쟁력은 패널에서 나오기 때문에 OLED 디스플레이의 기술 우위를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이라며 “양사 모두 집중하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예상보다 수익성이 저조한 점도 세트업체 간 마케팅 공방에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50년 승부사, 자존심 대결로

앞서 IFA에서 LG전자의 공격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삼성전자는 LG전자가 기술설명회를 개최한 당일인 지난 17일에서야 같은 내용의 기술설명회를 열고 한 발 늦게 대응에 나섰다. 그간 “1등을 헐뜯는 행위”라며 LG전자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던 삼성전자가 맞불을 놓은 만큼 양사 공방도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LG전자가 주장한 CM이란 기준은 8K 디스플레이에서 적용되기엔 무의미한 기준이며 화질은 종합적 성능으로 구현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직 소비자가 시청할 8K 영상 콘텐츠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 같은 공방전은 성장이 주춤한 TV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양사의 신경전은 TV 시장에 활기를 더하는 마케팅 소구였으나, 2000년대 들어 경쟁사 제품을 직접 비판하는 공방전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양사 임원들이 공식 석상에서 경쟁사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를 드러낸 점 역시 두 회사 간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는 전언이다. 일례로 지난 2011년 3D TV 열풍 당시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기자들과 만나는 공식 석상에서 LG디스플레이 엔지니어들에 대해 노골적인 평가 저하 발언을 해 논란을 사기도 했다.

경쟁사의 대표 모델인 QLED TV와 OLED TV를 대립각으로 세운 양사의 비방전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16년을 기점으로 LG전자는 삼성전자의 QLED TV가 자발광이 아닌 LCD TV에 퀀텀닷(QD) 필름을 추가했을 뿐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삼성전자가 QLED TV라는 명칭에 대해 “삼성의 마케팅 부대가 사과를 오렌지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오렌지가 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앞서 지난 7월 LG디스플레이는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삼성전자의 QLED TV를 두고 “고양이가 커진다고 호랑이가 못 된다”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삼성전자는 LG전자의 OLED TV의 ‘번인’ 문제를 지적하며 날을 세웠다. 지난해 삼성전자 태국·말레이시아 법인은 QLED TV 번인 10년 무상 보증 프로모션을 광고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OLED TV를 언급한 바 있다. 한 해 전인 2017년엔 유튜브에 ‘QLED 대 OLED, 12시간 화면 잔상 테스트’라는 동영상을 올린 데 이어 자사 뉴스룸에 '알아두면 쓸모 있는 TV 상식, 번인 현상 왜 생기는 걸까?'라는 글을 게시하며 직접적으로 OLED 디스플레이의 번인 현상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OLED로 판 옮기나 

양사의 TV 기술 경쟁은 향후 8K와 같은 차기 디스플레이 영역에서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LCD 생산을 줄이고 차기 TV 패널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OLED TV 분야가 새로운 경쟁 무대가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삼성전자에 패널을 공급하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중국의 LCD 저가 공세로 사업 부침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30인치대에 이어 대형 패널의 표준인 50인치대까지 수익성이 제조원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차기 디스플레이로 OLED TV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받는 상황이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가 아산 탕정 LCD 일부 라인을 철거하면서 이 자리에 QD-OLED 생산 설비를 들여올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한데, 업계 일각에선 이달 말이나 4분기 초 삼성디스플레이가 QD-OLED 설비 발주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OLED TV는 기존 LCD TV와 전혀 다른 구조를 갖는다. 물리적 기판으로 빛을 내는 LCD와 달리, OLED의 경우 자발광 소재를 통해 빛을 내는 구조다. 물량 공세가 통하는 중국 업계가 LCD 패널 기술은 따라잡아도 OLED 기술은 쉽사리 따라잡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만약 삼성디스플레이가 QD-OLED 전환 투자에 속도를 낸다면, 양사의 TV 경쟁은 OLED 디스플레이에서 이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업계 관계자는 “QLED TV를 내놓은 상태에서 대형 OLED로의 전환 투자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닐 것이며, 후발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QD-OLED를 차기 디스플레이로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면서도 “중국조차 LCD를 감산할 정도로 수익성이 저조한 상황이라 차기 디스플레이 발굴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