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문가들 “조건 채웠으나 수입 거부된 기업 사례 확보해야”···“日 불투명성·일방적 태도, 안보상 예외의 '신의성실 적용' 어긋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했다는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절차를 시작했다. 시작된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통상 전문가들은 GATT 11조 위반에 대한 ‘근거 확보’ 가 중요하다고 17일 밝혔다. 일본의 안보상 예외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근거를 확보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11일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분쟁해결 절차를 시작했다. 지난 7월 4일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한 것에 따른 대응이다.

정부는 일본에 양자 협의 요청서를 보내고 2개월 동안 일본과의 합의에 실패할 경우 WTO에 패널 설치를 요청한다. 최종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대 3년이 걸린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리지만 시작된 소송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다. 패하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꼴이 되어 앞으로도 정치적 동기에 따른 경제 규제가 반복될 수 있다. 한국이 이길 경우 일본 정부는 이러한 보복성 조치를 할 공간이 줄어든다.

통상 전문가들은 승소하기 위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제11조 위반에 대한 근거 확보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GATT 11조의 ‘수출 제한 조치의 설정 및 유지 금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제소 이유를 설명했다.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11조는 수량 제한의 일반적 폐지를 말한다. 11조 제1항은 다른 체약 당사자 영토의 상품의 수입에 대해 또는 다른 체약 당사자 영토로 향하는 상품의 수출 또는 수출을 위한 판매에 대해 할당제나 수입허가 또는 수출허가 또는 그밖의 조치 중 어느 것을 통해 시행되는지를 불문하고, 관세·조세 또는 그밖의 과징금 이외의 어떠한 금지 또는 제한도 체약 당사자에 의해 설정되거나 유지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WTO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1일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는 수출 제한 조치의 설정·유지 금지 의무에 위반된다. 일본 정부는 사실상 자유롭게 교역하던 3개 품목을 각 계약건별로 반드시 개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어떠한 형태의 포괄 허가도 금지했다”며 “이에 우리나라 기업들은 심각한 피해에 직면했다. 이전에는 주문 후 1, 2주 내에 조달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90일까지 소요되는 정부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며 언제든지 거부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의 7월 4일 조치 이후 지금까지 단 3건만 수출이 허가됐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실 무역협정팀 부연구위원은 “WTO 소송에서 한국 정부의 주된 공격 방법은 GATT 11조 수량 제한 원칙 위반으로 보여진다”며 “일본도 포토레지스트 2건, 에칭가스 1건 등 조금씩 수출허가를 내주는 것이 소송적 측면에서 GATT 11조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이 위원은 “한국 정부는 일본 조치가 GATT 11조 위반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양태·구도·구조가 수량 제한임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한국 기업들의 수입 거절 건이 충분히 소명됐는지 등을 봐야 한다. 일방적으로 일본 경제산업성이 불투명하게 판단했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 기업들의 수입 조건과 일본 수출 기업의 수출 조건 등 일반적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즉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도 경제산업성이 충분한 근거 없이 거절했다는 복수의 사례들을 모으는 게 GATT 11조 수량 제한 원칙에 반한다는 논거의 정공법이 될 것”이라며 “이에 더해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무역에 미치는 효과, 예를 들어 일본으로부터의 에칭가스 수입 감소 등을 부차적 증거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WTO에서 승소하기 위한 관건은 일본의 GATT 11조 위반을 입증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며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가 수량 제한 의도임을 언급한 일본 당국자 발언 또는 일본 정부 자료들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 일본 ‘안보상 예외’ 주장에는 “日 불투명성·일방적 태도 '신의성실' 어긋남 보여야”

한국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GATT 11조 수량 제한 원칙을 위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다. 수출규제 조치가 GATT 제21조에 따라 안보상 예외라는 일본 정부의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GATT 제21조는 제(b)항은 WTO 회원국이 자신의 필수적 안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 GATT 상의 의무 위반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GATT상의 의무 위반이 정당화되는 조치는 ▲핵분열성 물질 또는 그 원료가 되는 물질에 관련된 조치 ▲무기·탄약 및 전쟁도구의 거래에 관한 조치와 군사시설에 공급하기 위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행해지는 그밖의 재화 및 물질의 거래에 관련된 조치 ▲전시 또는 국제 관계에 있어서 그밖의 비상시에 취하는 조치 등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으로 수출한 군사적 전용 가능 물품이 북한에 유입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9일 일본 공영방송 NHK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의 원재료 등 수출규제를 엄격화한 배경에는 한국 측의 무역관리 체제가 불충분해서 화학무기 등으로도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물자가 한국에서 다른 국가로 흘러들어갈 리스크를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있다”며 “수출규제 대상이 된 소재는 화학무기인 사린가스 등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지만 일부 한국 기업이 발주처인 일본 기업에 서둘러 납품하도록 재촉하는 것이 상시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물자가 한국에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타국으로 전달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 당국은 무역관리 체제가 미흡해 한국 기업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안보상 예외 논리에 대해 구체적 증거를 공개하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점을 WTO 분쟁 해결 과정에서 내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천기 위원은 “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유엔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됐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구체적 증거를 내세우지 않는 등 불투명성을 보인다”며 “또한 일본 정부는 유엔 안보리 등을 통해 대북 제재 위반 여부를 검증받자는 한국 측 제안도 거부했다. 최근 WTO 패널은 GATT 21조의 안보적 예외에 대해 ‘신의성실하게 적용해야 할 의무’에 의해 제한된다고 판정했다. 일본 정부의 불투명하고 일방적 태도는 신의성실 적용 의무에 반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한국 정부는 이러한 점을 주된 논리로 사용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의 보복 조치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다는 것과 이와 관련한 일본 정치인들의 성명은 부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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