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청약 접수 시작했지만 ‘고가 임대료’ 논란 휩싸여
민간임대 보증금, 최대 1억원 넘어···주변 오피스텔 시세보다 더 높은 수준
“부모 도움 없이 분양받기 힘들 듯···주거취약계층 청년들을 돕는다는 본래 정책 취지 퇴색”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6년 청년들의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겠다며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청약 접수를 시작한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이 고가 임대료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은 ‘청년세대의 주거비 부담과 주거빈곤율 해소’를 위해 서울시가 마련한 임대주택이다. 하지만 원룸 규모의 주택임에도 보증금이 최대 1억원을 넘는 등 임대료가 비싸게 책정돼 주거취약계층인 청년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 모집 요건에 소득과 자산 기준이 없어 이른바 ‘금수저’ 청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공공지원 민간임대, 보증금 최대 1억원 넘어···“저소득 청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

17일 서울시는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에 대한 청약 접수를 시작했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대중교통이 편리한 역세권에 임대주택(공공·민간)을 지어 대학생·청년·신혼부부에게 공급하는 정책이다. 서울시가 용도지역 상향, 용적률 완화, 절차 간소화, 건설자금 지원 등을 제공하면 민간사업자가 공급하는 식이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6년 청년들의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주거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청년층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상황은 달랐다.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충정로’ 임대조건 / 자료=서울시

이번에 청약 접수에 나선 청년주택은 서대문구 충정로 3가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충정로’와 광진구 구의동 ‘옥산그린타워’다. 이 주택들은 공급면적 16~39㎡ 규모의 원룸형으로 구성됐다. 전체 물량 중 공공임대주택이 20%(64가구),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이 80%(509가구)를 차지한다. 공공임대주택은 보증금 2130만~4092만원, 월 임대료 7만~16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편이다.

반면 많은 물량이 공급되는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은 보증금과 월 임대료가 더 높게 책정됐다.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의 보증금은 3640만~1억1280만원, 월 임대료는 29만~78만원이다. 업계에서는 최소 3500만원 이상의 보증금이 필요한 임대 조건은 저소득 청년층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를 보면 30세 미만 청년 가구주의 평균 전·월세 보증금은 3193만원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역세권 청년주택에 들어가려면 평균보다 최소 500만원 이상 많은 자금을 더 마련해야 하는 셈”이라며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의 경우 더욱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 주변 오피스텔·다가구보다 비슷하거나 더 높아···입주 기회 ‘금수저 청년’들에게만 돌아갈 수도

특히 임대료는 주변 오피스텔 시세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정보 서비스업체 직방에 따르면 올해 서울 서대문구·마포구·종로구·중구 등에서 거래된 전용 30㎡ 초과~40㎡ 이하 오피스텔은 임대보증금 3707만원, 월 임대료 62만원선에 형성돼 있다. 이번에 공급되는 ‘어바니엘 위드 더 스타일 충정로’는 전용 39.83㎡가 보증금 1억1200만원(임대보증금 비율 40% 기준), 월 임대료 66만원이다. 청년주택이 보증금은 3배 이상 높고, 월 임대료는 4만원 더 비싼 셈이다. 보증금은 8500만원까지 줄일 수 있지만 월 임대료는 78만원까지 올라가게 된다.

원룸으로 불리는 단독·다가구주택과 비교하면 금액 차이는 더 벌어진다. 전용 20㎡ 이하 규모의 단독·다가구는 보증금과 월 임대료가 각각 1551만원, 35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역세권 청년주택 전용 17.66㎡(보증금 3990만원·월 임대료 37만원)와 비교하면 보증금은 절반 이하, 월세는 비슷한 수준이다. 또 전용 20㎡ 초과~30㎡ 이하 기준을 놓고 비교하면 역세권 청년주택이 단독·다가구주택에 비해 보증금은 두 배 이상, 월세는 10만원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0㎡ 초과~40㎡ 이하는 보증금이 최대 3배 이상, 월세가 20만원 이상 비쌌다.

주택 유형별 임대보증금 및 월 임대료 현황 / 자료=서울시, 직방

월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환산한 ‘환산전세금’으로 비교해도 역세권 청년주택은 시세보다 비슷하거나 비싼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용 20㎡ 이하만 신축 오피스텔보다 2000만원 이상 저렴했지만, 20㎡ 초과~30㎡ 이하는 1000만원 가까이 높았다. 전용 30㎡ 초과~40㎡ 이하는 498만원이 비쌌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기부채납된 공공임대분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원룸에서 거주하는 청년 계층이 역세권 청년주택의 임대료를 부담하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크다”며 “주변 거래가격과 비슷한 수준에 책정된 역세권 청년주택의 임대료를 과하다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지만 서울시의 정책 목표인 ‘청년 난민 해소’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 ‘청년들의 주거비 경감’ 등에는 부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역세권 청년주택이 주거취약계층을 위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오피스텔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청년계층이 수평 이동할 수 있는 주거 상품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임대료 수준이 높아 부모의 도움 없이 분양받기 힘들다는 점에서 역세권 주택의 입주 기회가 이른바 ‘금수저 청년’에게만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공공 지원 민간임대 물량은 별도의 자산·소득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만큼 자금이 충분한 청년들이 대거 청약 신청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물론 이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주거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지원한다’는 청년주택의 본래 정책 취지가 퇴색된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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