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反日)’ 이란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큰 재미를 볼 것으로 기대했던 영화 ‘봉오동 전투’가 큰 빛을 못 봤다. 정치권의 응원, 특히 여당의 단체관람에 힘입어 내심 천만관객까지 노렸던 영화는 ‘엑시트’ ‘분노의 질주: 홉스&쇼’ 등에 밀려 평범한 관객동원에 그쳤다. 원인은 지나친 국수주의·민족주의를 강요하는 이른바 ‘국뽕’ 영화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손익분기점(450만명)을 넘기긴 했지만 500만 관객을 모으는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오동 전투’가 큰 흥행몰이를 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는 우리관객들이 정치적인 소재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 불매 운동 등 지금과 같은 사회 분위기면 충분히 흥행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대로 우리 관객들은 유독 정치소재 영화를 좋아했다. 같은 반일영화 ‘명량’ ‘암살’이나, 진보 정치색이 짙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택시운전사’ ‘변호사’ 등 그것이다.

결을 다르지만 영화 ‘베테랑’도 대기업을 적으로 설정 했다는 측면에서 정치적이다. 

올해 극장가에 추석 대목이 없어졌다. 예년 같으면 민족의 최대명절의 특수에 걸맞게 큰 돈을 번 한국영화들이 있었지만 올핸 별로다. ‘나쁜녀석들: 더 무비’ ‘타짜: 원 아이드 잭’,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등 한국영화가 관객동원 경쟁을 벌였지만 흥행성적은 예년 만 못하다.

그런중에도 추석 연휴 극장가 흥행 1위는 ‘나쁜 녀석들:더 무비'가 차지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의 누적 관객수는 9월15일까지 300만명에 달한다. 경쟁작들인 '타짜:원 아이드 잭'과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2, 3위를 각각 차지했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는 호송차량 탈주 사건이 발생해 사라진 최악의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 나쁜 녀석들이 다시한번 뭉친다는 범죄 액션 영화다.

대목에 흥행작이 안 나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추석 명절이 해외 여행 등에 관객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트랜드가 긴 연휴때는 여행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석 대목’ 이란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옛말이 됐다. 또한 상반기에 ‘극한직업’ ‘어벤져스:엔드게임’ ‘기생충’ ‘알라딘’까지 네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한 것도 한 원인이다. 이미 극장을 찾았을 사람은 다 찾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지난 7월 31일 여름에 개봉한 ‘엑시트’가 천만영화에 등극할 것이 보인다. ‘엑시트’의 성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티켓 파워가 있는 스타급 연기자 없이 영화적인 재미와 감동으로 큰 재미를 본 것이다. 외양은 재난영화의 장르를 취했지만 속살은 청춘남녀의 로맨스, 코미디등이 잘 배합된 누구나 볼수 있는 가족영화를 선사한 것이다. 특히 이 영화는 ‘봉오동 전투’등 ‘반일’ 시류에 편승한 복병을 만나 자칫 흥행에 빨간 불이 켜질 수도 있었지만 영화적인 재미로 잘 극복했다.

이번 ‘엑시트’의 성공은 향후 우리 영화가 어떻게 관객들과 소통해야 하는 지를 말해준다. 과도한 메시지보다는 영화적인 재미와 감동을 훨씬 선호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는 이제 깊은 늪에 빠질지 모른다. 정치나, 폭력 등 ‘핫’한 소재로 같은 류의 영화만 양상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장르영화가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으나 향후 영상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회의적인 면이 훨씬 더 많다. 다양한 소재및 장르도 없고 저예산 영화아니면 블록버스터로, 제작비 50억원 전후의 중간 사이즈 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특정 이데올르기에 함몰된 채 영화적인 다양한 실험이나 미학 발전도 없다. 그저 같은 것만 반복적으로 재생산 할 뿐이다. 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도 “성수기에 비슷한 소재의 고예산 장르 영화가 반복 개봉하면서 관객의 피로감이 커졌다”며 “올해 상반기에 1000만영화가 4편이나 쏟아져 나와 하반기 수요가 줄어든 것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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