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직접 고용 판결에도 도로공사는 ‘자회사 방식’ 강행 의지

사진은 지난 10일 오전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노조원 수백명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하는 모습 . / 사진=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10일 오전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노조원 수백명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하는 모습 . / 사진=연합뉴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직접 고용을 두고 노동자들과 공사 간 갈등이 확대됐다. 대법원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확정판결한 상황에서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결단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11일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은 한국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9명을 연행했다. 수납원들이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하며 항의 시위에 나선 것은 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과 어긋나는 고용 대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요금수납원 368명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요금수납원들이 공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요금수납원들 업무처리 과정을 공사가 관리·감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요금수납원들이 공사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한 점도 하나의 근거였다. 대법원은 요금수납원들이 사직하거나 해고를 당했지만 도로공사의 직접 고용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요금수납원들이 2013년 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지 6년만의 최종 판결이다. 1심과 2심도 요금수납원이 승소했다.

그러나 도로공사 측은 지난 9일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요금수납원들만 직고용 또는 자회사 전환을 하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은 비슷한 이유로 1심과 2심 소송이 진행 중인 1116여명의 요금수납원들의 경우 직접 고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별적 특성에 차이가 있어 사법부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또한 도로공사 측은 본사의 직접 고용 대상에게는 요금수납 업무가 아닌 버스정류장이나 졸음쉼터 등의 환경정비 업무 등을 맡길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자회사 설립을 통한 요금수납원 정규직화를 추진한 도로공사는 지난 7월 1일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만들어 수납업무를 맡겼다. 현재 요금수납원 6500명 중 5000명은 자회사로 옮겼다. 1500명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 진행중이다.

이에 박순향 톨게이트본부지부 부지부장은 “도로공사는 자회사를 통한 수납원 정규직화를 강행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을 두 달 앞두고 자회사를 만들었다”며 “이 과정에서 강요에 의해 원치 않는데도 자회사로 간 노동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 부지부장은 “도로공사는 요금수납원 모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1심과 2심 소송이 진행 중인 노동자들도 지난 대법원 판결과 같은 성격의 소송이기 때문이다”며 “대법원의 직접 고용 판결에 따라 도로공사는 자회사를 해체하고 요금수납원들의 업무를 유지시키면서 직접 고용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도 관련 대법원 판결이 다른 요금수납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도로공사는 원고들 개개인별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입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기초적인 사실 대부분은 원고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인 점, 전국에 산재해 있는 도로공사 영업소를 통일적으로 운영 관리할 필요성, 도로공사가 계속 외주사업체 소속 근무자들의 업무수행에 지휘· 명령을 해왔다고 보아야 하는 점 등을 근거로 도로공사의 주장을 배척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고등법원 원심판결이 지적한 것처럼 전국에 산재해 있는 도로공사 영업소는 통일적으로 운영 관리된다”면서 “서울톨게이트 영업소가 불법파견이면 경기, 대전, 대구, 전남톨게이트 영업소도 불법파견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과 경험칙에 부합하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도로공사가 대법원 사건 외 나머지 소송은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청구가 함께 겹쳐있어 소송계속이 필요하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는 그리고 명확한 근로자지위확인부터 먼저 해결하면 된다”며 “부당 해고된 요금수납원들을 우선 원직에 복직시키고 임금차액 부분은 정산하거나 소송으로 다투면 된다”고 주장했다.

도로공사는 전국 톨게이트 영업소를 자회사로 전환하기 이전인 6월 30일 요금수납원 중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1500명을 해고했다. 대법원이 도로공사에게 요금수납원 직접 고용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음에도 도로공사가 자회사를 강행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민주당 입장이 주목받는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아직 정부와 민주당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 문제와 관련해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에 정의당은 “당연한 판결이자 당연한 승소였던 대법원 판결에 도로공사는 제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 사태에 수수방관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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