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공단 입찰 재공고에 신중 입장···“사실상 ‘제안 금리’로 결정” 지적도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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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원 규모의 기관 고객 유치전을 앞두고 주요 시중은행들이 과거와 달리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관 고객을 새롭게 확보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상징성보다는 현실적인 수익성에 더 치중하는 눈치다.

4대 연기금으로 분류되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하 공무원연금공단)의 주거래 은행 계약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 금고 계약에서도 각 은행은 동일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의 출혈 경쟁으로 높아진 이익 제공 규모가 은행들의 투자 요인을 저하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공무원연금공단은 10일 ‘2020~2024년도 공무원연금공단 주거래은행 선정’ 입찰 시행을 재공고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주거래은행은 ▲공무원연금급여 지급 업무 ▲재해보상급여 지급 업무 ▲대여학자금 대부금 지급 업무 등을 수행하게 된다.

공무원연금공단의 내년도 예산은 22조6739억원에 달하며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운용기금은 지난 6월말 기준 9조7023억원을 기록했다. 운용자산 증가 외에도 주거래은행은 대외신인도 향상, 잠재고객 확보 등의 부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지난달 열린 설명회에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등이 모두 참석했다. 그 때문에 지난 30년 동안 유지된 국민은행의 독주 체제에 다른 은행들이 도전장을 던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다소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비쳐진다. 기관 영업에 따른 수익성과 비용 등을 검토 중이지만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내비치는 데는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수성과 탈환의 의미가 있어 대부분의 입찰에 참여했지만 최근에는 수익성이 너무 떨어질 경우 아에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 차례 재공고가 이뤄졌다는 것은 은행들의 입찰 조건이 공단과 맞지 않았거나 단 한 곳만이 입찰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어느 쪽이든 은행들이 과도한 베팅을 지양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사회공헌의 의미도 있지만 역마진이 나게 되면 은행들이 해당 사업을 할 이유가 없다”며 “예산 크기도 중요하지만 부수거래 확대를 통해서 수익을 늘릴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선정 기업이 사실상 기관에 대한 이익 제공 규모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공무원연금공단이 제시한 평가표는 총 100점 만점이며 ▲재무안정성(20점) ▲업무수행능력 및 전략(10점) ▲사업관리(25점) ▲시스템 연계 보완(20점) ▲사회적 가치 실현(5점) ▲제안 금리(20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계량 지표는 재무안정성과 제안 금리뿐이며, 재무안정성은 주요 시중은행이 거의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제안 금리에 의해 주거래은행이 결정되는 셈이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 2014년과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α’를 요구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출연금이나 특별 금리 등을 내세우는 출혈 경쟁이 자주 일어났지만 정부의 자제 조치 등으로 이른바 ‘오버페이’가 줄어드는 추세”라며 “서울시 금고도 100년 만에 바뀌었던 만큼 이번에도 주거래은행이 바뀌지 않는다는 확신은 없지만 그동안의 운영 경력이나 적극성 등을 살펴보면 국민은행이 미세하게나마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흐름은 다른 기관 주거래은행 경쟁과 지방자치단체 금고 경쟁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공무원연금공단 외에 한국인터넷진흥원, 국가핵융합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 등도 주거래은행 입찰 공고를 내놓은 상태다.

지자체 중에서도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남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등의 시·구금고 계약이 연말에 만료된다. 경남은행, 대구은행, NH농협은행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지방 금고 경쟁에 시중은행들도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모두 면밀히 검토한 후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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