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카드사 규정 미준수···투숙 후 결제시기 이전으로 카드 분실신고
중국 유커 중심으로 피해 사례 늘어···포털서 카드번호 조회 사이트도 발견돼
카드 승인 취소·현장 결제 등 사후 조치 외 특별한 대책 없는 게 한계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이 키인 결제를 악용하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이 키인 결제를 악용하고 있다. / 사진=셔터스톡

숙박 O2O(Online to Offline·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를 통한 숙박 플랫폼을 이용하는 해외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관광객들 사이에서 호텔에 선(先) 결제를 한 후 숙박을 하고 카드사에 결제 이전일로 분실신고를 하는 이른바 ‘키인(Key In)’ 결제 방식이 악용되면서 숙박업계의 피해가 점차 확산돼 주의가 요구된다.

10일 호텔업계에 따르면,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이 키인 결제 방식을 악용해 카드번호를 통해 숙박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키인 결제 방식은 숙박 예약객이 호텔에 자신의 신용카드 번호와 유효기간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대행결제하는 방식이다. 주로 호텔, 여행사 등에서 이러한 결제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키인 결제 방식을 악용하는 데는 상당수 글로벌 신용카드사들이 키인 결제 방식을 정상 거래로 인정하지 않는 규정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용카드사는 신용카드 명의자가 현장이나 온라인에서 직접 결제하지 않고 업소가 카드 정보를 넘겨받은 뒤 단말기에 입력해 결제하는 키인 결제를 비정상 거래로 본다.

해외 관광객들은 키인 결제 후 숙박까지 한 다음에 카드 분실신고를 하는데, 분실일을 결제시기 이전으로 신고하면 카드사에서는 분실일 이후의 거래를 정상거래로 인정하지 않아 호텔에서는 숙박비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키인 결제를 악용하는 사례는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중국 카드 일련번호 19자리 중 처음 6자리가 특정 은행이나 카드사의 특정 상품을 나타내는 고유 번호인 ‘빈(BIN) 번호’라는 점을 노린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 유커들은 카드번호를 알아내 선 결제를 한 후 숙박을 하고, 카드사에 결제 이전일로 분실신고를 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 유커들은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37만222명이었던 중국 유커들은 올해 5월 50만413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올해 중국 유커는 1월 39만2814명, 2월 45만3379명, 3월 48만7623명, 4월 49만3250명, 5월 50만413명, 6월 47만5007명, 7월 51만9132명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실제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에선 은행·카드사별 고정된 앞 6자리 수를 알려주는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일부 중국 내 사이트에선 카드번호를 입력하면, 카드번호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고 카드 소재 등 기본 정보와 함께 고객 센터 번호를 제공하며, 고객 센터로 연결을 취하면 성명, 나이 등 개인정보도 함께 확인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 일련번호의 특성을 활용해 카드 번호 조회 사이트를 통해 진위 여부를 판단한 후 고객센터에 연락해 개인정보를 알게 되면 키인 결제 악용은 열려있는 셈이다.

중국 포털에서 검색된 카드사 번호 진위여부 및 개인정보 확인 사이트. / 사진=중국 신용카드 정보 검색 홈페이지 캡처
중국 포털에서 검색된 카드사 번호 진위여부 및 개인정보 확인 사이트. / 사진=중국 신용카드 정보 검색 홈페이지 캡처

중국 상해에 거주 중인 리아무개씨는 “SNS 등을 통한 키인 결제 악용 사례는 확산되지 않는 분위기지만, 일부 사례가 온라인상에서 번지면 이를 악용하는 유커들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베이징에 거주 중인 왕아무개씨는 “키인 승인 악용 사례는 들어본 적 있다”며 “한국 시내 면세점에서 출국 정보를 악용해 한국산 화장품을 대량 구매한 후 부정 거래한 것처럼 많은 중국 유커들이 한국에서 키인 결제를 악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후 피해를 입은 호텔은 선결제를 하지 않고 현장 결제만 가능하다는 내부 규정을 마련하는 등으로 대응했다. 다만 이는 후속 조치에 불과해 빈 어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특별히 없다. 카드사도 카드 승인 취소, 거래정지, 카드 재발급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문제의 원천적인 해결책은 현재 없는 상황이다. 특히 오는 10월 1일부터 중국은 국경절 열흘 간 장기 연휴가 예고돼 있어 빈 어택을 통한 키인 결제 악용 피해 사례는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지고 있다.

서울 한 호텔 관계자는 “체크인시 제시했던 신분증 성명과 신용카드 명의자가 일치해 결제를 허락했는데, 일부 외국인 관광객이 떠난 후 카드가 분실 신고 처리돼 피해를 입었다”며 “저희 호텔뿐 아니라 다른 곳도 피해를 입었다고 들어 우선 선결제를 하지 않는 방안으로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금감원 측은 "여름 휴가에서 추석 연휴로 이어지는 3분기는 신용카드 해외 부정사용 피해가 급증하는 시기"라면서 "이 기간 소비자들의 주의가 각별히 필요하며, 카드 부정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안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핀테크 기술을 활용한 번호 노출 등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유효한 카드번호에 대한 큰 금액 결제 시도, 대량의 피해가 발생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빈번하게 발생하는 개인정보 유출 및 관리 미흡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정보 보호체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