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원 받는 中·복수의 완성차브랜드 보유한 日···韓 기술력만 갖고 맨몸전투
전문가들 “치열한 경쟁의 이유, 배터리는 포스트 반도체···적자생존 재현 과정”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왜 우리 기업끼리 다투느냐, 경쟁국인 중국·일본이 반사이익을 얻는 것 아니냐.”

지난 4월 촉발돼 점차 확전을 거듭하고 있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공방에 대한 여론의 주된 궁금증이다. 글로벌 전기차 분야에서 중국·일본 등과의 경쟁이 심화되는 시점에 굳이 우리 기업끼리 법정다툼을 벌이는 데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경쟁국들에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화해를 종용하는 목소리와 정부의 움직임도 속속 감지된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간 경쟁이 고조되는 현상이 경쟁국들과 다른 환경에 놓인 우리 배터리 업계의 특성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조업에 강점을 보이는 한·중·일 3국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삼분하고 있지만, 개별 국가의 특성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기업의 가장 큰 견제 대상은 공교롭게도 같은 한국기업이다. 이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다툼 역시 이 같은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모 업체 관계자는 이번 공방을 두고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들임엔 틀림없으나, 이들에게 국가대항전 스포츠경기와 같은 자세를 요구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며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이는 국가차원의 경쟁이 아닌 개별 기업들이 회사의 존폐를 걸고 벌이는 치열한 전쟁터”라고 언급했다. 자국 리그에서 경쟁하고 올림픽 등 세계무대에선 협동하는 스포츠와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는 의미다.

중국은 명실상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다.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형성된 내수시장이 탄탄하고, 기존 완성차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자 일찍부터 전기차 육성에 뛰어들어 배터리 업체들에 대한 지원 등이 폭넓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SNE리서치가 발표한 올 상반기 전기차 시장 점유율에 따르면, 상위 10위권 내 5개 중국업체가 진입해있다.

일본의 경우 글로벌 완성차브랜드를 다수 보유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생산량 확대가 전제돼야 한다. 파나소닉이 현재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 1위 테슬라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감수하면서도 토요타와 손잡은 것 역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한국은 중국에 비해 열악한 내수 규모를 지녔다. 정부지원이 확대된다 하더라도 국가구조 상 중국만큼의 지원은 불가능하다. 완성차업체도 현대자동차그룹이 전부다. 열악한 상황에서 유럽·미국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기술력이 세계 최고임에도 시장점유율에 있어 한계를 보이는 까닭도 이 때문이란 분석이 지대하다. 올 상반기 우리 업체들의 시장점유율 순위는 LG화학이 4위를 기록한 가운데,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6위와 9위를 차지했다.

폭스바겐그룹을 비롯해 주요 유럽 완성차업계에서는 2025년부터 2030년 사이 전기차생산량 비중을 대폭 끌어 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가격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부품 수급의 다변화를 꾀하기 위해 복수의 배터리 업체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의 유럽공략이 가속화되는 단계지만, 여전히 유럽 내에선 기술력 면에서 우위를 보인 한국 배터리를 선호하는 현상이 짙다. 한국기업의 가장 큰 경쟁자가 한국기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시장이 ‘포스트 반도체’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무수한 기업들이 도전했다 소수 기업의 독점적 점유율이 고착화 돼 삼성전자와 인텔 등 일부기업들만 살아남은 반도체 시장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이 배터리시장에서도 재현될 것으로도 관측된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소송전 역시 이 같은 경쟁과 다툼의 일환으로 봐야지, 국가대항전의 시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가 막대한 수익원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해 보이지만, 반도체뿐 아니라 대부분 업종에서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듯이 결국 과실은 일부 기업들이 과점하는 형태를 띠게 될 것”이라며 “현재 배터리 시장에 뛰어든 기업들 모두가 반도체시장의 삼성전자·인텔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으니, 치열한 경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며 양사의 이번 법정공방이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정부와 청와대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중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간 회동이 추석연휴 이후 이뤄질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양사는 “현재로선 특별히 언급할만한 내용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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