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본부 “지속적 적자로 사업 이행 여력 없어”···파트너 SK에너지도 우정본부 측 사업 포기의사 전달받지 못해
우정본부 1300억 차세대 기반망 사업자선정서 SK 연거푸 고배, 업계선 “양측 갈등 있던 것 아니냐”···우정본부 “불화 탓 중단 아니다”
3개월 내 첫 협업 사례 도출·3년 내 30개소 안팎 미래형 복합 네트워크 개발 등 구체적 청사진도 물거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주유소와 우체국의 만남으로 주목받았던 SK에너지와 우정사업본부(우정본부)의 ‘공유인프라 프로젝트’가 좌초됐다. 지속적인 적자로 인해 재정적 여건이 뒷받침 되지 못했던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정본부는 2011년 이후 만성적자 상황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14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2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4일 우정본부 관계자는 시사저널e와의 통화에서 “지속적인 적자로 인해 비상경영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이행할만한 재정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해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못했다”면서 “향후 흑자전환 등 실적 개선 후 재차 시도할 순 있겠지만, 현재로선 이를 이행할만한 여력도, 계획도 전무한 상태”라고 밝혔다.

SK에너지와 우정본부는 지난해 8월 양측이 보유한 자산 등을 활용해 사회·경제적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전국 3500개소 우체국과 3570여개의 SK에너지 주유소를 바탕으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주유소에 우체국이 들어서고, 우체국에 전기·수소차 충전소가 설치되는 방안 등이 논의됐으며, 기타 추가사업 발굴 등을 추진하는데 합의했다.

당시 양측은 구체적인 시기와 복안도 도출했다. 경기 의정부 소재 노후 우체국을 리모델링해 3개월 내 택배와 주유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이를 발판삼아 3년 내 30개소 안팎의 미래형 복합 네트워크를 개발하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했으나, MOU 체결 후 우정본부는 비용적 부담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 결국 사업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

프로젝트 파트너사인 SK에너지와 모기업 SK이노베이션 등도 우정본부의 사업포기 의사에 대해 전해 듣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취재 과정에서 시사저널e로부터 우정본부의 포기의사를 전해 듣게 된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해당 프로젝트는 사업적 이윤의 추구보다, 공공 인프라 구축이란 의미가 컸던 사업”이라면서 우정본부와의 프로젝트 불발 소식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번 사업 무산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분위기다. 공공기관 특성 상 수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전임수장이 체결한 MOU의 시행이 불투명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MOU는 조경목 SK에너지 사장과 강성주 당시 우정사업본부장이 전면에 나서 체결했다. 강 본부장은 지난 7월 우체국노조의 파업 등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이후 현재까지 우정사업본부장 직은 공석으로 남아있고, 정진용 직무대리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강 전 본부장은 행정고시 30회 출신으로 2017년부터 우정사업본부장을 맡았다. 우정본부 내에서는 이번에 좌초된 SK에너지와의 협업을 비롯해, 한국국토정보공사(LX)와 우편분야 드론활용 확대 등을 위해 손잡는 등 우정본부의 변화에 주안점을 뒀던 인물로 평가된다.

일각에선 SK그룹과 우정본부 간 불화가 사업 결렬의 이유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올 상반기 우정본부는 1300억원 규모의 차세대 우정사업기반망 회선서비스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다. 지난 6월 주사업자로는 KT가, 부사업자로는 LG유플러스가 선정됐다. 각각에 도전장을 낸 SK브로드밴드와 SK텔레콤 등은 연거푸 고배를 마셔야 했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일부 평가항목에서 지연이 돼 결과 발표 또한 늦어지게 됐는데, 당시 SK브로드밴드는 입찰가격에 있어 KT보다 우위를 점했음에도, 다른 항목에서 뒤져 탈락을 맛봐야 했다. SK텔레콤도 LG유플러스에 기술평가 및 입찰가격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SK가 우정본부의 입찰에서 탈락하고, 도모했던 공유인프라 사업이 무산된 배경에 지난해 MOU 체결 이후 양측에 갈등이 생기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우정본부 측은 그릇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우정본부 관계자는 “같은 SK그룹일지라도 차세대 기반망 사업자 선정에 도전했던 곳은 SK브로드밴드와 SK텔레콤이며, 공유인프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곳은 SK에너지”라면서 “별도의 법인들과 이뤄졌던 개별적인 사안들이었으며, 불화로 인한 프로젝트 중단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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