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진료 및 검사 남발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 마련해야

한국만큼 국민들 입장에서 의료 시스템이 잘 돼 있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아파도 병원비 아까워서 끙끙 앓다가 병을 키우는 일은 거의 없다. 외국의 경우 병원비 부담 때문에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 않고 마트 등에서 약을 사던지 알아서 몸조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문재인 케어는 이처럼 잘 돼 있는 의료복지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려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돈이 없어서 꼭 필요한 치료나 검사를 받지 못할 가능성을 줄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허나 늘 문제는 제도가 아닌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받쳐주지 않으면 엉망이 된다.

문재인 케어 역시 슬슬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 때문이다. 진료 및 검사가 싸다보니 불필요한 경우에도 이곳저곳 다니며 의료쇼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차피 정부 돈인데 이것저것 다 해보자’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어차피 돈 버는 병원 입장에선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만 국민들 전체 입장에선 상당한 손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 검사하게 두는 것도 국민건강 증진에 나쁘지 않잖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 비용이 어디서 오는 건지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의료보험은 낸 만큼 혜택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쉽게 말해 보험료를 내는 사람들이 십시일반해서 축적한 보험료를 병원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차지하는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을 우리가 정의롭고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적어도 내가 그 돈을 쓰지 않더라도 꼭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릴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꼭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야만적인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해주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지만, 의료보험은 낸 만큼 혜택을 못 받아도 불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작정 많이 이용해야 본전 찾는 거다’는 식의 사람들이 생기면 그 시스템과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정작 고액의 병원비가 꼭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혜택이 아무래도 줄 수밖에 없다. 아직도 온갖 희귀질병으로 허리가 휘는 집안이 전국 방방곡곡에 많은데 ‘어차피 나랏돈으로 충당되니 MRI나 찍어보자’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된다고’ 하면서 그냥 두는 건 무책임한 행위다. 국민건강 증진을 해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보험료를 내던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안기는 것이다. 의료쇼핑객들의 몇 명이나 되는지와 무관하게 가려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내는 보험료가 저렇게 쓰이고 있었어?’란 생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의료쇼핑족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제도 자체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없는 지갑에서 보험료 내면서도 바빠서 병원 한번 못가고 몸조리하는 사람도 있다.

의료보험재정의 상당수가 재벌들이 아닌 일반 주머니에서 충당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쩌다 정말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의료쇼핑하는 환자가 많아서 기다리다가 치료를 못 받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당연히 본전 생각이 난다. ‘OECD 보건통계 2019'에 따르면 한국인의 1년 간 외래진료 횟수는 16.6회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전체평균의 2배가 넘는다. 굳이 통계를 들지 않아도 병원 한 번만 가보면 알 수 있는 현실이다. 하다못해 응급실을 가도 하릴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케어는 제도 운영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특히 더 성공하기 힘든 정책이다. 지금 정책시행 초기이다 보니 슬슬 부작용들이 발견되는데 바로 이때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가 논란을 넘어 롱런하기 위해선 관련부처의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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