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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화산업
  • 김병재 영화칼럼리스트(filmbj@naver.com)
  • 승인 2019.09.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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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제작: PL엔터테인먼트, 럭키제인타이틀)을 관람했다. 국내 초연한 이 작품은 ‘창작 초연’ 뮤지컬이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며 이례적으로 흥행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객들의 ‘입소문’ 마케팅 덕이었다.

이 뮤지컬은 외국 작품에 비해 유명도는 떨어지지만 젊은 연기자들의 열연과 ‘우리 전통의 것과 현대적인 것 간의 조화’ 라는 기획의도를 잘 살려 ‘ 한국적인 정서로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한국 뮤지컬을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내용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받으며 살고 있는 백성들이 다시 자유를 되찾는 이야기로, 고되고 힘든 삶을 신명 나는 무대로 표현했다. 시대는 다르나 오늘을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뮤지컬공연은 외국 작품이 태반이다. 현재 공연 중인 ‘맘마미아’ ‘벤허’ ‘헤드윅’ ‘시라노’ 등에서 알수 있듯이 거의 외국 수입 뮤지컬이다. 창작 뮤지컬보단 외국 뮤지컬이 많은 것은 관객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뮤지컬 특성상,  호소력있는 명곡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관객 귀에 친숙한 대부분이 외국 곡들이다. 1970년대 인기 그룹 '아바'의 명곡을 바탕으로 만든 '맘마미아!', 세계적인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곡을 쓴 ‘오페라의 유령’ 등이 대표적이다.

뮤지컬은 연극 등 다른 공연 예술과는 달리 상업적이다. 감미로운 음악, 화려한 무대 장치와 미술, 현란한 율동이 한데 어울러져 관객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같은 공연예술인 연극보다 화려하고 스케일이 크다. 그러면서도 연극과 마찬가지로 공연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한 현장 공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천장 높은 극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오케스트라음악과 함께 대형 커튼이 올라가는 순간을 상상해 보라. 바로 이 신세계가 열리는 순간을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 관객들이 ...

대형 뮤지컬의 매력은  영화같은 스펙터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노래와 군무(群舞) 등 현장의 분위기를 체험 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아우라(Aura)의 체험이다. 뮤지컬이 공연예술의 특질인 아우라를 잃지 않으면서 영화같은 스펙터클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의 핵심인 아우라(Aura)는 독일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논문에서 사용한 용어로서 '예술작품에서 느껴지는 유일무이(唯一無二) 성의 분위기를 말한다.)

공연예술은 산업화가 어렵다.  무제한적으로 콘텐츠를 복제해 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송 영화등 영상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국가적인 혹은 공적인 지원이 필수다. 정부가 해마다 문화부 예산 규모를 늘려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박근혜정부가 문화부 예산을 2%로 증가한 것도 문화를 산업으로 키워보겠다는 발상이었다. 이번 정부들어서도 예산이 늘어 올해 예산이 5조 9233억원이다. 문체부가 생긴 이후 최대 규모란다.  삶의 질과 여가가 중요해진 사회 분위기가 문체부 예산에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부문 별로는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이 1조 8853억원으로, 가장 비중(31.8%)이 크다. 이 액수가 공연예술에 직 간접적으로 연동돼 공연예술과 예술인의 창작과 복지에 쓰여 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의 모든 영역을 돈으로, 산업으로 환산해선 곤란하다. 자본주의에서 문화도 돈벌이가 될 수 있지만 안 될 수 있는 영역 또한 문화다. 이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와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순위를 영화 등 복제예술은 시장에 맡기고 공연 등 순수 공연예술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지금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는 ‘문화’와 ‘문화산업’ 이 대립하는 가운데 ‘모든 문화를 산업으로’ 라는 슬로건에 함몰되고 있는 듯하다. 세상이 그리가더라도  영화등 복제예술에서 상실한 아우라가 관중을  위안하고, 교육, 게몽한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된다.  후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문화가 문화산업의 병폐를 줄 일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작품의 감상할 때 느껴지는 심미안(審美眼)은 인간의 비판적인 사고와 자율성을 찾아 줄수 도 있기 때문이다.

김병재 영화칼럼리스트
김병재 영화칼럼리스트
filmb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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