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장점 살린 무인세탁소, 방문객 고려한 食메뉴···주유소에서 우체국 볼 날도
백산주유소, 대기업도 노하우 배우기 위해 찾아···문성필 대표 “기본이 경쟁력”

/사진=김도현기자
무인세탁소 '펭귄하우스'를 입점시킨 경기 수원시 SK네트웍스 직영 복합주유소. / 사진=김도현기자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부(富)의 상징으로 통하던 주유소사업이 저물어가고 있다. 거리 규제 완화 이후 주유소들이 물밀듯이 생겨나면서 대기업 직영점들마저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기차 등이 등장하면서 자동차 연료가 다변화됨에 따라 정유업계의 변화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저마다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유외(油外) 경쟁이 속속 전개되는 모양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자료 등에 따르면 28일 기준 전국의 영업주유소는 총 1만1502개다. 2010년(1만3107개)와 비교하면 1600여 곳의 주유소가 자취를 감췄으며, 최근 100일 동안만 하더라도 30여 곳의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주유소 거리 제한이 폐지돼 업체가 급증해 경쟁이 심화됐으며, 제 살 깎기 식 경쟁 등으로 쇠퇴했다”고 평한다.

◇무인세탁소 들어선 주유소도 생겨···운전자 특성 고려한 食메뉴 입점도

경기도 수원시 소재 SK장안주유소는 SK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다. 이곳은 다른 주유소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업종과의 협업을 택했다. 이른바 무인세탁편의점을 표방하는 스타트업업체 크리텍스의 ‘펭귄하우스’ 매장이 지난해 8월 입점한 것이다. 당초 편의점이 있던 자리에 과감히 세탁소를 설치한 배경에는 차상우 SK네트웍스 소장의 건의가 한몫 했다.

차 소장은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며 “현지 주유소들의 경우 좁은 면적에 집약적으로 설치됐는데, 주유소와 코인세탁소 그리고 두 면의 주차구역이 전부인데 이 같은 소형 복합주유소들이 곳곳에 있는 것에 착안해 신규 사업으로 본사에 건의하게 됐다”고 했다. SK네트웍스는 현재 이곳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직영주유소에 무인세탁소를 설치했다.

매장은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주유소를 소유한 SK네트웍스가 가맹점주로 돼 있다. 편의점을 운영할 당시에는 매출·이익에 비해 인건비 등 지출금액이 컸는데, 무인세탁소를 입점시킨 이후 별다른 제반 비용이 들지 않아 관리가 더 수월해졌다는 것이 차 소장의 설명이다. 세탁소 외에도 스피드메이트와 각종 휴게시설이 함께 설치돼 있어 고객 편의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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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세탁소 '펭귄하우스' 내부 모습. / 사진=김도현기자

세탁(30분)부터 건조(40분)까지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데, 일반적인 코인세탁소처럼 기다리는 고객들을 위한 휴게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에 더해 주유소 내부에 설치된 만큼 주차가 용이하며 주유, 세차, 차량 정비, 타이어 관리 등이 가능하다. 또, 27일부터 가동을 시작한 ‘ev Most’를 통해 전기차 충전도 할 수 있다. 차량 충전에는 방전 기준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차 소장은 “무인세탁소는 24시간 운영되기에 주유소 영업이 끝난 후에도 세탁을 하러 오는 분이 많다”며 “코인세탁기와 건조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드라이크리닝·물세탁·신발세탁 등도 가능해, 세탁물을 맡겨놓은 뒤 주유소에 들려 손쉽게 이를 픽업하는 고객들의 비율도 높다”고 첨언했다.

서울 동작구 소재 현대오일뱅크 사당셀프주유소도 최근 차별화된 서비스를 갖춘 곳으로 평가된다. 이곳은 주유소 내에 각종 편의시설을 두고 운전 중에도 쉬 취식할 수 있는 메뉴를 판매한다. 현재 이곳에서는 내외부 세차가 가능하며, 서울시 여성안심택배 보관함도 설치돼 있다. 또한 호두과자·핫도그 등을 파는 카페도 입점했다.

향후엔 주유소와 우체국이 혼재한 형태의 복합주유소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해 SK에너지와 우정사업본부는 각자의 자산을 활용해 사회·경제적 가치를 증진하자는 취지의 업무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 전국 3500여 개소의 우체국과 3570여 개소의 SK 주유소가 각자의 장점을 살려 점차 변화를 추구해 나가는 상태다.

◇“서비스강화 위한 정직원化, 고객 만족도 높인 경쟁력의 원동력”

서울 금천구 소재 백산주유소는 에쓰오일 간판을 건 ‘폴(Poll)주유소’다. 이곳 사업주 문성필 대표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만의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축적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전국 각지의 주유소 사업주들은 물론 SK텔레콤, E1, 롯데백화점, 한국도로공사 등 유수한 기업들이 백산주유소를 찾은 바 있다.

문 대표는 “서비스라는 기본에 충실했더니, 유외 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며 무엇보다 서비스가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다. 백산주유소는 다른 주유소들에 비해 근무자들의 평균연령이 다소 높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을 대거 고용하는 주유소들과 달리 대부분 오랜 기간 이곳에서 근무한 직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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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사업주가 운영하는 폴(Poll)주유소 임에도, 나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동종업계는 물론 대기업들도 견학을 온다는 서울 금천구 백산주유소. / 사진=김도현 기자

그는 “주유소는 결국 지척의 다른 주유소들과 한정된 지역민을 상대하는 일종의 서비스업인데, 정직원화를 통해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면서 고객과의 소통이 좋아졌다”며 “현재 시행하고 있는 유외 사업들도 사실 부수적인 수익을 노리기 위함이 아니라 직원들 고용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것”이라고 시사했다.

현재 주유소 내에는 호두과자 프랜차이즈 매장과 세차장, 차량용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호두과자 전문점을 제외하면 다른 주유소들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문 대표는 “주유소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직원들이 퇴사 후 가게라도 하나 차릴 수 있게 운영 노하우를 심어주고 싶었다”면서 “호두과자를 택한 것은 배우기 쉽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했다.

고객들도 주기적으로 찾는 주유소 직원들이 그대로다 보니 소통이 늘어나 신뢰감을 쌓았으며, 대표의 마음 씀씀이 덕에 책임의식을 갖게 된 직원들이 진심을 다한 서비스를 제공해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주유소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결국 백산주유소의 경쟁력은 본업인 서비스에 충실했다는 것이었다. 문 대표의 역할은 이 같은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 있었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겪은 일을 바탕으로 확립한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담은 ‘백산주유소: 가격보다 확실한 감동’이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2012년 4월 발간된 책은 6쇄를 할 만큼 판매량이 좋았다. 또한 직원들과 봉사단을 조직하고 다양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펼치며 고객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는 데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문 대표는 “나 역시 다양한 성공 사례들을 참고하고 이를 접목해보면서, 숱한 실패 속에서 쌓은 노하우를 책 속에 담게 됐던 것”이라며 “주위에 주유소도 많고 서울 외곽의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금천구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매 순간 기본에서 생각하고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며, 그것이 백산주유소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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