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미원부터 남극해 크릴오일까지···‘추석선물세트’ 변천사
  • 박지호 기자(knhy@sisajournal-e.com)
  • 승인 2019.08.27 16: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탕·미원 주고 받던 6070년대부터 에어프라이어 전용 찐굴비 나오는 2019년까지···당대 시대상 반영하는 명절 선물세트

‘추석선물세트’는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굴비 한 가지를 두고도 올해 선물세트 양상은 지난해와 다르다. 에어프라이어가 인기를 끄는 올해 추석에는 에어프라이어용 찐굴비가 등장했고, 프리미엄 식품에 대한 관심 증가로 자염·죽염·해양심층수 소금과 프랑스 게랑드 소금으로 밑간을 한 굴비 4종 세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매년 달라지는 추석선물세트의 과거 모습은 어땠을까 들여다본다.

◇ 60~70년대, 설탕·조미료 인기

지난 기사를 볼 수 있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 과거 추석 선물을 검색한 결과, 선물세트라는 개념도 만들어지지 않은 1960년대에는 추석에 쌀 등 식품 위주의 선물을 주고받았다. 설탕·조미료는 그중 최고급 추석 선물로 꼽혔다. 조미료 중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미원 1호(330g)는 500원에 팔렸다. 지금은 생소한 조미료인 미풍도 '최상품'의 경우 1450g 기준 1600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공산품도 물론 존재했다. 와이셔츠(와이샤쓰), 넥타이, 주류, 아동복 등이 비식품 인기 품목으로 꼽혔다. "새로운 디자인의 아동복과 내의류가 인기를 모아 소규모 재단공장들은 밤을 새우고 있는 형편"이라는 보도도 있었을 정도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1970년대에도 과자류·설탕·조미료 등 '메이커 선물세트'의 인기는 계속됐다. 1975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올해 추석 경기는 일부 백화점만이 호황을 누릴 뿐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저조한 양상을 드러냈다"면서 "3000~4000원 미만 아동복이나 신발류, 양말, 조미료, 설탕 등 소액 선물세트 등이 팔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변화한 모습도 있었다. 당시에도 식생활과 무관한 여성 속옷이나 과자, 세수비누, 화장품 등은 인기를 끌었다. 현재에는 수만원대에 달하는 화장품 세트가 당시에는 3000~5000원 선에 팔렸다. 가전제품도 주고받았는데, 라디오는 7000원대, TV는 10만원 안팎이었다. 1만원을 호가하는 수입상품 선물세트와 2만원대의 인삼, 정육, 갈비 세트도 등장하며 당시의 '호화품' 대열에 합류했다. 

◇ 올림픽 맞아 활기찼던 88년도 

1988년 8월 30일 경향신문  秋夕(추석)경기"前例(전례)없는 好況(호황) 예보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1988년 8월 30일 경향신문 "秋夕(추석)경기 前例(전례)없는 好況(호황) 예보" 기사. /사진=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

80년대로 넘어가면서 5만원대 주류 세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1981년도 8월 26일자 경향신문 기사는 "최근 경기회복세 등으로 추석 대목 매상고가 지난해보다 40%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류가 6400~5만원, 햇잣, 햇은행, 대추, 사과 등 제삿상 과일이 1만원~4만5000원에 판매된다. 5000~1만원 상당의 가족 단위 선물용 포장 세트와 3만~5만원대 정육, 청과, 생선 등 특수선 물상품도 등장했다"고 알렸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며 스포츠 붐이 일었던 당해는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1988년 9월 23일자로 동아일보는 "꿀, 영지버섯, 국산차, 인삼 등 건강식품과 자연식품이 웃어른에 대한 선물용으로 인기"라면서 "백화점에서는 꿀+인삼, 달맞이종자유+영지버섯 등 건강식품 선물을 마련해두고 있다. 올림픽 기념품 또는 민속토산품을 선물로 마련하는 움직임도 보인다"고 보도했다. 

1989년부터는 '외제 호화 선물세트'를 견제하는 시선도 나타났다. 1989년 9월 8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추석선물용 수입상품 가격대가 10만원대인 상품이 전체의 23.5%, 20만원대가 14.8%, 30만원대가 13.6%, 40만원대가 7.4%, 50만원 이상이 18.5%나 차지했다"면서 "국산최고품 주류 세트는 5만7000원 선"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 IMF로 차갑게 식은 명절 선물 인기

90년대로 들어서면서 1000원 단위의 선물세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식품류는 대개 2만~5만원 정도의 가격대를 보였고, 생필품류도 1만~3만원짜리 세트가 주를 이뤘다. 선물 고급화 시대의 서막이라고 볼 수 있다. 7만~9만원대의 불갈비, 쇠꼬리 정육 종합세트도 등장했다. 약과 강정, 제수용 한과를 모아 2만원대에 팔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1998년도 9월 7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유통업체들이 가격을 대폭 낮춘 IMF형 추석 세트를 내놓는 등 비상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동원은 참치캔 세트를 1만4500원에 내놓고,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도 세트 당 가격을 1만~1만5000원으로 한정하고 세트 구성 품목을 식용유·조미료 등 생필품 위주로 짰다는 증언도 나온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였던 1999년에는 전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1999년 9월 19일 한겨레 기사를 보면 "추석을 맞아 업체들이 준비한 값비싼 선물꾸러미가 판매 2,3일 만에 동날 정도"라면서 "60만원짜리 굴비꾸러미는 4일 만에 떨어지고 15만원짜리 국내 자연산 대하도 동났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전화로 선물세트를 주문하는 손님들을 설득하느라 백화점 직원들이 진땀을 빼고 있다고 묘사되기도 했다.

◇ 20C 핵가족화로 소포장 선물세트 등장

새천년에 들어서면서는 선물세트를 구매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긴다. 이른바 '초고속 인터넷망'이 곳곳에 깔리며 추석선물세트를 백화점·대형마트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하는 방식이 소개됐다. 온라인 주문을 하면 특별적립금과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방식이 시작되기도 했다. 

아울러 빠른 핵가족화에 따라 선물세트의 크기도 달라졌다. 2002년 9월 13일자로 문화일보는 "덩치 큰 추석선물세트가 사라지고 있다. 가족수가 적어짐에 따라 작게 포장된 선물이 인기를 끌고 있는 데다 물가 폭등으로 가격 부담까지 커지자 유통업체들이 앞다퉈 소포장 추석선물세트를 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시에 캐비어 선물세트도 출시되는 등 고가품에 대한 수요·인지가 늘어난 시기이기도 했다. 

◇ 마침내 2019년, 평범한 제품은 가라

올해 추석선물세트의 특징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제품'에 있다. 롯데마트는 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는 등 다양한 효능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남극해 힐링 크릴 오일세트를 판매한다. 아울러 남태평양 지역의 열대과일인 노니로 만든 비넌 노니 주스 세트도 판매한다. 

명절선물세트의 클래식이었던 굴비에도 특별함이 가미됐다. 이마트의 ‘찐 부세굴비 세트’는 개발 단계부터 에어프라이어에서 요리하기 좋게 말린 부세굴비를 증기에 찐 후 급속 동결해 진공포장한 상품이다.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에어프라이어 전용 제품 포트폴리오가 추석선물세트로까지 확장된 모양새다. 

박지호 기자
산업부
박지호 기자
knhy@sisajournal-e.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