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적 성격이 강한 국내 콘텐츠 이용자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음악-게임사 수퍼브를 인수했다. 수퍼브는 음악 지적재산권(IP) 관련된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로, 음악기획사가 게임 서비스와 관련된 영역까지 확장하게 된 것이다. 

사실 게이미피케이션을 음악산업에 적용한 경우는 많았다. ‘프로듀스 101’시리즈로 대표되는 서바이벌 음악 오디션프로그램이 그렇다. 그들은 대부분 프로그램 시청자들을 게이머로 위치시키고, 투표를 통해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들을 데뷔시키게 만든다. 이러한 물질적 보상 및 정신적 교감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아티스트나 셀러브리티의 ‘육성’에 몰입하게 만드는 기재가 된다.

이처럼 게임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행위’를 전제하게 만드는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게임소비자들을 우리는 ‘이용자’ 혹은 ‘플레이어’, ‘게이머’라고 부른다. 게임을 하지 않는 자들은 게임이란 콘텐츠를 소비하지 못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게임을 하는 사람(게이머)과 게임 사이에는 또 다른 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 바로 게임을 하는 자들을 지켜보는 구경꾼이다. 오락실 구경문화를 생각해보자. 사회문화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난 필자가 게임을 접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잡지를 구매하거나 PC와 콘솔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건 필자의 남자형제가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종종 PC RPG를 하는 동생의 게이밍을 관람했는데, 그 행위는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굉장한 몰입감을 안겨줬다. 이처럼 게임하는 것을 시청하거나 중계하는 산업이 바로 ‘e스포츠’영역이다. e스포츠에는 중계하는 방송사와, e스포츠에서 활동하는 게이머(선수), 투자자, 그리고 이를 시청하는 시청자(관람객) 등이 산업적 요소를 이루고 있다,

e스포츠는 탄생의 역사부터 ‘방송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태초에 게임업계가 아닌 ‘방송’의 영역으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재는 e스포츠 또한 독립적인 영역이지만, 서브컬처적인 성격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 e스포츠는 게임이용자들로부터 파생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e스포츠’는 게임하기의 2차 창작물일 수 있다.

e스포츠의 이용자들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을 ‘본다’. 동시에 그들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잠재적 행위성 또한 갖게 된다. 특히 e스포츠는 게임을 이용하면 할수록 적극적으로 시청에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실제로 자신의 게임 플레잉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프로게이머들의 게이밍을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게임의 행위성을 잠재하고 있다.

국내 콘텐츠 이용자들은 상대적으로 생산자적 성격이 강한편이다. 1인 미디어에서부터, 다양한 콘텐츠들이 이용자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e스포츠의 기원이 한국에서 시작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없으면 내가 만든다’는 건 이제 더 이상 아마추어의 영역이 아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큐레이팅하고, 산업화하는 것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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