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S 투자자 “투자성향 분석 설문 받은 적 없어···PB가 임의로 작성”
퇴직자인데 '자산 증가 또는 유지' 항목에 체크

자본시장법 실시 이후 권유 가능한 투자상품./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자본시장법 실시 이후 권유 가능한 투자상품./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우리은행이 주요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인 DLS 판매를 위해 고객들의 투자성향 분석 설문 내용을 임의로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규모 원금 손실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DLS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의 불완전 판매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20일 우리은행을 통해 DLS 상품을 투자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담당 프라이빗뱅커(PB)가 고객의 동의 없이 투자성향을 임의로 조작했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투자성향은 '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의 5단계로 구분되는데 PB가 이 중 ‘공격투자형’으로 고객들의 투자성향 분석 설문을 임의로 작성했다는 주장이다.

우리은행에서 DLS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펀드인 DLF(파생결합펀드)상품에 1억원을 투자했다는 김모씨(28)는 “독일 국채 금리와 연계된 DLF는 최대 손실률이 100%에 달한다. 이런 1등급의 초고위험 상품은 공격투자형 투자자가 아닌 이상 권유도 못 하는 것”이라며 “가입 서류를 다 받아놓고 나중에 투자성향 점수 설문조사 내용을 PB가 임의로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류에 자필 서명을 할 당시 설문 항목이 체크돼 있지 않았다"며 "나중에 확인해본 결과, 내가 작성하지 않은 내용이 항목에 기재돼 있어 PB에게 항의했더니 상품 판매를 위해 임의로 작성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제46조에 따르면 금융사는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 권유를 할 때 일반 투자자의 투자 목적, 재산 상황 및 투자 경험 등에 비춰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투자 권유를 해선 안 된다. 때문에 리스크가 있는 상품에 가입할 때는 투자자의 성향 분석 후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우리은행이 상품 정보 동의부터 덥썩 받아놓고 성향분석 설문은 고객 동의 없이 임의로 기재했다고 주장한다. 

자본시장법 제46조 2에 따르면 ‘금융사는 일반 투자자에게 투자 권유를 하기 전에 면담·질문 등을 통해 일반 투자자의 투자 목적, 재산 상황 및 투자 경험 등의 정보를 파악하고, 일반 투자자로부터 서명, 기명 날인, 녹취 등의 방법으로 확인을 받아 이를 유지·관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확인받은 내용을 투자자에게 지체 없이 제공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논란이 된 DLF는 파생상품투자펀드의 일종으로 초고위험 상품에 해당한다.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초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상품은 원칙적으로 공격투자형인 투자자에게만 권유할 수 있다.

한 시중은행 PB는 “원칙상 고객의 투자성향보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권유 및 판매해선 안 된다”며 “고객이 만약 위험등급을 초과하는 상품 가입을 원할 경우에는 추가적인 서류 작성을 통해 투자자 확인서에 동의를 분명히 받아야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품을 신규 가입할 때는 고객의 투자성향 분석 설문조사를 선행하게 돼 있는데 이런 과정 없이 판매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우리은행 일부 지점은 공격투자형의 투자성향이 아닌 일반 투자자에게도 DLS 상품을 권유 및 판매했으며 사전에 투자성향 설문도 받은 적이 없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심지어 판매를 위해 일부 PB는 고객의 투자성향이 공격투자형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임의로 설문 항목을 작성해 DLS를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부 이모씨(61)가 받은 투자자정보 확인서. 이씨가 작성하지 않은 문항에 체크돼 있으며, 설문 문항 중 1번의 경우 정년퇴직한 이씨의 신상과는 다른 내용으로 작성됐다./사진=제보자 제공
주부 이모씨(61)가 받은 투자자정보 확인서. 이씨가 작성하지 않은 문항에 체크돼 있으며, 설문 문항 중 1번의 경우 정년퇴직한 이씨의 신상과는 다른 내용으로 작성됐다./사진=제보자 제공

우리은행과 40년 넘게 거래해 온 VIP 고객이라는 주부 이모씨(61)는 담당 PB가 자신의 안정형 투자성향을 알고 있었음에도 임의로 투자성향 설문을 작성해 DLS 상품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나는 무조건 제1금융권에서만 거래하고, 담당 PB도 내가 안정형 투자성향인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매 당시 원금 손실 우려가 없고 선진국 독일의 채권이니 독일이 망하지 않는 이상 손실이 날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PB의 말을 믿고 4월경 우리은행 독일 국채 금리 연계 펀드상품에 가입했다. 그러나 현재 남은 투자금은 700만원으로, 투자 원금에서 95%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실제로 이씨는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 지난주 우리은행에서 거래신청서 사본을 받아본 결과 작성한 적이 없는 투자성향 분석 설문조사 문항이 체크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투자자성향 분석 설문 항목을 보면 1번 문항에 ‘현재 일정한 수입이 발생하고 있으며 향후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에 체크가 돼 있는데, 나는 정년퇴직자로 현재 일정한 수입원이 없다”며 “담당 PB가 임의로 설문 내용을 작성했으며 본인 역시 이를 시인했다”고 말했다.

주부 A씨가 받은 본인과 남편의 투자자정보 확인서. 역시 본인이 작성한 적 없는 내용의 설문 문항이 체크돼 있으며 본인과 남편 서류 모두 체크된 글씨체가 일치한다./사진=제보자 제공
주부 A씨가 받은 본인과 남편의 투자자정보 확인서. 역시 본인이 작성한 적 없는 내용의 설문 문항이 체크돼 있으며 본인과 남편 서류가 모두 같은 내용으로 작성돼 있다./사진=제보자 제공

우리은행을 통해 같은 상품에 투자한 주부 A씨(58)도 “이사 자금을 위해 적금을 해지하러 갔다가 상품 가입 권유를 받았다.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날 일이 전혀 없는 상품이라며 가입을 유도했다”며 “해당 상품의 원금 손실 가능성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고 투자성향 설문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우리은행을 통해 서류를 확인해 보니 작성하지도 않은 투자성향 설문조사에 다른 사람의 글씨체로 문항이 체크돼 있었다”며 “남편과 1억원씩 따로 상품에 가입했는데 두 개의 서류 모두 같은 글씨체로 설문 항목이 체크돼 있었으며, 모두 ‘공격투자형’이라고 진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아직까지 어떤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금융감독원 합동검사가 시작되면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