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니클로, 아사히맥주가 안 팔린다는 소식이다. 불매운동 때문이다. 미국과 무역마찰을 빚은 중국에서도 미국산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국가 간의 경제 대립은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 없다. 서로가 죽는 치킨게임이다. 특히 교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선 빨리 정상을 회복하는 것이 최상이다.

이같은 경제 대립 상황과 달리, 문화계는 우호적이진 않지만 적대시하지 않는 분위기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제천영화제에서 일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일본 영화가 선을 보였고, 방탄소년단의 최근 일본공연도 성황리 끝났다. 한일간의 경제전쟁에도 문화계는 무풍지대다.

문화계 행사가 경제 전쟁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대중적인 영향력이 적지 않은 영화상영이 탈(脫)정치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잘한 일이다. 영화는 종종 사회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일부 영화인들은 영화를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었다.

대개의 상업영화는 킬링 타임(killing time)이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다.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해 우리영화 대부분은 시간 죽이기에 안성맞춤인데 관객들은 최면에 걸린 듯 2시간 남짓동안 세상사를 잊고 가상의 영화내용에 몰입해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요즘 볼 수 있는 영화 ‘엑시트’ ‘ 분노의 질주: 홉스&쇼’ ‘알라딘’ 등이 대표적이다. 상업영화라는 측면에선 ‘봉오동 전투’도 마찬가지다. 일본군과 싸우는 대규모 전투장면 등이 최근의 반일감정에 힘 받아 감정해소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영화가 킬링만 하는 건 아니다. 힐링(healing)하는 영화도 있다. 현재 상영 중이거나 개봉예정인, 딸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일어나는 과거의 비밀이 서로를 의심하는 가족 미스테리 ‘누구나 아는 비밀’ 실업자들의 유쾌한 반란을 표현한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초등학교생들의 섬세한 심리를 그린 '우리들' 등은 스펙터클한 장면은 없지만 등장인물 간의 오해와 갈등, 유머와 화해를 통해서 사랑, 열정, 인생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대체로 속이 후련한 킬링 타임용 영화보단 훨씬 위안과 감동을 받는다.

이렇듯 영화가 꼭 강한 메시지를 줄 이유는 없다. 킬링하고 힐링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업영화의 공식이 영화초반 지리멸렬하다가 결국 감동을 주거나 , 웃기다가 울리고 결말부분에 용서하고 화해, 성장한다. 이른바 장르 영화의 공식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선동하거나 관객을 가르쳐들려는 영화가 있다. 마치 80년대 동유럽과 남미등 제3세계를 중심으로 한 저항영화처럼 관객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영화가 사회운동, 혹은 정치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케이스다.

지금도 메시지만을 주장하는 콘텐츠가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대개는 시사적인 내용이거나 역사적으로 묻힌 사건 등을 소환해 재조명 해보는 콘텐츠들이다. 이 중에는 애국심을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이른 바 ‘국뽕’(지나친 국수주의·민족주의를 비하하는 속어) 영화들이 있다. ‘디워’ ‘명량’ ‘인천상륙작전’등이 그 색채가 강하다. 나름 웰 메이드(well-made) 하게 만들어 적지 않은 흥행성적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영화는 자칫 주제의식이나 목적이 강한 나머지 딱딱하거나 지루할 수 있다. 

이번 ‘봉오동 전투’도 ‘국뽕’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반일 정서에 편승한 ‘국뽕’ 영화라는 비판과 ‘우리가 기록해야 할 승리의 역사’라는 평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아마 ‘국뽕’의 기준은 관객마다 다르고 그 차이는 백짓장 한 장 차이일수 있다. 어쩌면 논란자체가 마케팅에 도움이 될수 도 있을 것이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을 특징으로 하는 영화 등 콘텐츠산업은 일회적인 상업적인 성공, 실패를 떠나 지속적인 콘텐츠 생산이 관건이다. 손익분기점을 넘어 최소한 차기작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문화가 아닌 산업으로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그럴려면 현실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 묘사 보단 메타포를 통해 넌지시 일깨워, 문화예술의 본령에 더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장사도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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