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미국은 신규 화학물질만 신고하는데 한국은 기존 물질도 신고해야
화학물질 규제 주무부서 일본은 경제산업성인데 한국은 환경부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일본 수출규제에 대비해 국내 소재부품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기업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원장은 12일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소재·부품산업, 한일 격차의 원인과 경쟁력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소재산업 활성화와 관련, “가장 근본적 해결책은 기업환경 개선을 통한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며 이같이 밝혔다.

권 원장은 그 방안으로서 “R&D 관련 세제 지원 확대 등 혁신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동시에, 연구계 주 52시간 획일적 적용과 전문연구요원제 감축, 화학물질 규제 등 과학기술 및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논의를 재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재 개발을 위해선 특수한 경우 주 52시간제도 적용을 받지 않게 하고 일부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날 행사에선 소재 국산화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한국의 반도체와 일본의 소재 산업은 글로벌 분업과 협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라며 한국 반도체의 일본 소재산업 종속론, 과학기술계의 소재부품산업 외면과 대기업의 중소기업 육성 회피 주장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한국 소재 부품산업의 경쟁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원 부족국가로서 필요 소재를 수입해야 하므로 완벽한 국산화는 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홍배 동의대 무역학부 교수는 일본 소재부품 산업이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중기술 개발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10년 안에 한국의 기술 수준이 일본의 99.5%까지 높아져도, 남은 0.5%의 차이가 일본의 핵심 경쟁력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기술 품목 중심의 생산협력과 함께 기술투자 민관 협력, 공동법인 설립 등을 제시했다.

한일 소재부품 산업 격차의 원인으로 화학물질 평가 및 관리 규제의 차이를 들었다. 곽노성 한양대 과학정책학과 특임교수는 “화학물질 평가 규제 강도가 일본, 미국, EU, 한국 순으로 일본과 한국이 극명히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과 미국은 신규물질만 신고하지만 한국 화평법은 신규 및 기존 물질을 모두 신고하게 돼 있다. 곽 교수는 “기존물질 신고제를 운영하는 EU와 비교해서도, 전문 인력의 질적 역량은 물론 수적 현격한 차이로 인해 EU방식은 한국에서 혼란만 초래할 뿐 실행 불가능하다”며 “비공개로 진행되는 한국과 달리 EU는 평가과정을 전면 공개하고 민간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규제 목적의 전환을 강조하며 안전 외에도 산업의 발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은 규제의 주무부처가 환경부인데 비해 일본은 경제산업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일본은 지난해에도 약 1만 4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규제 설계 및 집행에 있어 기업의 필요와 애로사항을 반영하는데 한국은 사기업에게 평가 책임을 부과하고 있어 비슷한 평가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사회를 맡은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는 “경쟁력 강화 및 기업환경 개선 논의가 소재부품 산업에 국한되기 보다는 국내 기업 및 산업 전반의 혁신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들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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