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높게 추진해 온 일감 몰아주기 규제 일부 풀어주기로···“日 더 이상 안정적 수급처 아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본 오가며 분주히 해법 모색···최태원 SK 회장, 수펙스 비상회의 직접 주재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와 각계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 등을 수입해 온 기업을 위해 그동안 강화해 온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직접적인 충격 여파가 가해진 기업들은 총수가 중심이 되어 비상경영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내부거래 제재 완화 방침에···비판 목소리 새나오기도

오는 29일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에 앞서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 추진에 총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부처 간 협업을 바탕으로 이번 일본의 규제로 인해 부품 조달 등에 어려움을 겪게 될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온 선제적 조치인 셈이다. 후속 조치로 핵심 소재 자급화를 위한 전문 인재 육성 등 지원책도 내놓았다.

예상 가능한 비판을 감수한 측면도 적지 않다. 이번 정부의 주요 기업 지원책을 보면 △연장 근로 허용 △인허가 기간 단축 △계열사 간 내부거래 허용 등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 현 정부 출범 후 강도 높게 기업을 압박하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규제들이었다. 물론 모든 기업이 아닌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으로 그 대상을 한정했으나, 사회노동계의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내부거래의 경우 총수의 차익 편취 및 계열사 간 부당 지원 등을 강하게 견제해 왔다는 점에서 “배신감이 크다”는 반응이 나왔다. 예상 가능한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공정위를 통해 “법 위반 우려 없이 핵심 소재·부품 등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조치일 뿐”이라며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전체를 완화할 뜻은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비판은 계속되는 양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9일 논평을 통해 “수출 제한 조치 대응책이 실질적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 완화로 이어져선 곤란하다”면서 “신규로 소재·부품 사업에 진출해 국산화하는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긴급성이 요구되는 거래인지 의문이며, 향후 긴급성이 요구되는 상황이 해소될 경우 재차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할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스럽다”고 했다.

이 같은 비판에도 일선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정부의 철학에 흠집을 낼 수 있을 만한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했다는 것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별도의 단계를 거치지 않게 됨으로써, 수월한 일처리 또한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부의 완화 방침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추가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핵심 부품의 일본 의존도에 대해 관심이 높지만, 정작 왜 일본 제품을 사용하는지는 현실적으로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면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각종 규제가 기업 활동에 상당한 애로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대해 정부가 인식하고 좀 더 폭넓게 완화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타격 큰 삼성·SK, 이재용·최태원 중심 비상경영체제 돌입

이번 일본의 보복 조치로 주요 대기업 중에선 반도체사업을 펼치고 있는 삼성과 SK 등의 타격이 클 것으로 지목된다. 그동안 양국은 정치·사회적 반목이 반복됐음에도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협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경제보복 조치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더 이상 일본이 안정적 수급처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셈인데, 총수들이 전면에 나서 각 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본의 첫 보복 조치라 할 수 있는 ‘불화수소(에칭가스)’ 규제 때부터 일본을 오가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긴장하되 두려워하지 말자”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직접 생산라인을 돌며 차별화된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일본 출장 중 몇몇 기업의 경우 이 부회장의 미팅 제안을 거부해 만남조차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대 때부터 오랜 시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업체들의 등 돌림이었기에 충격이 컸을 것”이라 전했다. 이어 그는 “출장을 다녀온 뒤 안으로는 직원들을 독려하고, 외적으로는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비상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그룹 2인자로 꼽히는 조대식 의장과 계열사 대표들이 중심이 돼 협의회가 이어져 왔기에,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최 회장은 그동안 참석을 기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시행을 앞두고 최 회장이 수펙스 비상회의를 소집했다는 것만으로도 사안의 심각성을 방증해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통상 수펙스 회의는 매달 마지막 주에 열리기 마련인데, 최근 열린 비상회의는 최 회장이 직접 소집했다는 점 외에도 시기적으로도 상당히 이례적 회의여서 주목된다”고 소개했다. 이날 최태원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SK그룹은 위기 때마다 이를 기회로 바꿔온 DNA가 있다”며 “슬기롭게 대처하고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