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최 취업박람회 등에서 일본 기업 비중 축소 검토···日 취업, 최근 5년간 해마다 늘어
日 취업 준비하던 취준생들 어려움 호소···고용부 “취업 피해 없도록 지원할 것”

일본 정부가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키로 하면서 한일 갈등이 취업전선까지 번졌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일본 정부가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키로 하면서 한일 갈등이 취업전선까지 번졌다.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일본 정부가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키로 하면서 한·일 갈등이 취업전선으로까지 번졌다. 본격 시작된 하반기 채용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경기 부진에 따라 공채 규모를 줄이는 방향을 고려 중인데, 해외 취업에까지 악재가 겹쳐 특히 일본 취업을 준비하던 취업준비생들의 한숨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7일 한국을 수출관리상의 일반 포괄허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고 관보에 게재했다. 지난 2일 일본 각의(한국 국무회의격)에서 통과된 이번 개정안은 오는 28일 시행된다.

◇日 ‘화이트리스트’ 공포에 취준생들 고민 커져

한·일 무역전쟁의 장기화가 확실시되면서 일본 취업을 준비하던 취준생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9월24일과 26일 이틀간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국내 최대 규모의 해외 취업박람회, 이른바 ‘2019년 하반기 글로벌 일자리 대전’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고용부 측은 “일본 기업 참여율이 높은 상태에서 행사를 열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아예 박람회를 취소하거나 일본 기업 비중을 줄인 상태로 여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대학·취업 커뮤니티는 이미 일본 취업 정보를 주고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청년들은 한·일 갈등으로 번진 일본 취업에 대한 어려움과 취업 방안 등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한다.

커뮤니티에 오른 글들의 대부분은 정부가 주관하는 해외 취업박람회 취소 소식이다. 다수의 일본·아세안 기업이 참가하는 이 박람회는 국내에서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구직자들에게 사실상 ‘입사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는 대형 행사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김아무개씨(23)는 “한·일 갈등이 이어져도 취업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일본 취업만을 목표로 준비한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일본 기업 관계자를 만나거나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려워 이번 하반기 취업박람회를 기대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난감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이아무개씨(26)는 “일본 기업 취업이 다소 수월하다는 얘기를 들어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데 하반기 취업도 어려워질 것 같아 아예 취업 준비 방향을 바꿔야 하나 고민된다”며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데 외교 갈등으로 정부가 해외 취업도 막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일본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3년간 정부의 취업박람회, 국외 연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국외 취업에 성공한 청년 구직자 1만5712명 가운데 일본 취업자는 4385명(27%)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까지도 우리 정부는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독려해 왔다. 다만 이번 일본 경제보복으로 일본으로의 취업이 어려워져 취준생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양상이다. 실제 정부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해외 취업 연수와 알선, 취업장려금 지급 등을 통해 해외 취업을 돕는 K-Move 스쿨에서도 다른 해외 국가에 비해 일본 관련 스쿨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최근 집계한 해외 취업 종합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일본으로 취업한 인원은 5328명(전체 해외취업 인원 대비 26.3%)이다. 구체적으로 2014년 338명(20.1%), 2015년 632명(21.8%), 2016년 1103명(22.9%), 2017년 1427명(27.9%), 2018년 1828명(31.6%)으로 미국, 호주, 베트남 등보다도 높고 해마다 그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집계한 최근 5년간 해외취업 종합 통계 표. / 자료=한국산업인력공단, 표=이다인 디자이너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집계한 최근 5년간 해외취업 종합 통계 표. / 자료=한국산업인력공단, 표=이다인 디자이너

고용부 청년취업지원과는 “현재 여러 상황을 고려해 하반기 박람회 관련 일정과 참여 대상 국가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재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 교류까지 번진 한·일 갈등···비자 발급까지 제한받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 내에선 한국인 비자 규정을 까다롭게 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일 양국이 경제전쟁에 돌입하자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지난 1일 “일본 내에선 한국인 비자를 까다롭게 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고 말해 일본의 추가 보복 조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차관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것 외에 여러 가지 메뉴(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며 “인적 교류 제한은 심각한 조치”라고 밝혔다. 다만 일본 정부가 실제로 비자 제한 카드를 꺼낼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정부 측 입장이다.

실제로 일본은 한국인 비자 발급 제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도 지난 3월 국회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에 대한 재산권 침해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무역 관세 보복, 한국 송금 중지, 한국인 비자 발급 중지 등을 예로 든 바 있다.

경제 보복 조치에 맞춰 일본 언론도 비자 발급 규제 관련 기사를 보도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6월28일 아사히신문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학생 비자를 받아 불법 취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일본 학생 비자가 취업 목적 입국의 발판이 됐고,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된 일본 정부의 유학생 늘리기 정책이 위장 유학생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케이신문도 고노 다로 외무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지난 7월 19일 “현 단계에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많은 노력을 지출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며 “사증(비자) 발급을 엄격화하는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일본이 당분간 추가 조치를 꺼내지 않고 속도 조절을 하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가 일본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본 내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자 발급 조치가 취해질 경우 우리 청년들의 해외 취업은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 청년취업지원과는 “박람회 행사와 별도로 일본 취업 준비를 해 온 청년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한국 청년 채용을 희망하는 일본 기업 정보를 청년들에게 계속 전달하는 등 취업 알선 사업과 현재 지원하고 있는 K-Move스쿨 등 연수 프로그램은 계속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당한 경제보복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적어도 취준생의 피해 사항을 파악하고 보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며 “그동안 일본은 장기 체류비자, 취업비자 등을 받기에 용이한 국가였는데 만약 일본 내 규정이 강화되면 취준생은 물론 일본에 취업한 젊은 층의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분위기에 휩쓸려 취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박람회를 없애기로 한 것은 무책임하다고 본다”며 “정부는 한 명의 국민이라도 더 일할 수 있도록 취준생들의 취업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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