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호 서울 중구청장 ‘노재팬 배너기’ 설치 결정 강행 후 약 6시간 만에 철회
일본 여론 악화·WTO 협정 위반 소지 등 우려···여론 커뮤니티·SNS 중심 확산

서울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동호로, 청계천로, 세종대로, 삼일대로, 정동길 등 중구 일대에 걸렸던 ‘노(보이콧) 재팬-No(Boycott) Japan :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배너기가 설치 후 약 6시간 만에 내려졌다.

앞서 서울 중구청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일본 제품 불매, 일본 여행 거부 등의 의미를 담은 총 1100개의 배너기를 6일 오전 10시부터 가로등 현수기 걸이에 걸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성난 시민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 재품 불매운동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협력이라는 게 중구청의 설명이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중구는 서울의 중심이자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가는 지역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에 협력·동참하겠다”고 취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 중구청장은 이날 오후 자신의 SNS를 통해 배너기 설치 작업을 중단하고, 설치됐던 배너기도 모두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본정부의 경제보복에 국민과 함께 대응한다는 취지였는데 뜻하지 않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중구청의 노 재팬 배너기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 일본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불매운동을 국민의 자발적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비판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서 중구청장이 배너기 설치 결정을 철회한 데에는 중구청의 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확산되면서다.

중구청이 배너기를 설치할 경우 ▲일본인 관광객 불쾌감 조성 ▲일본 여론 악화 ▲정부 주도 프레임으로 비춰질 여지 ▲관 개입으로 인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소지 등이 우려된 다는 내용의 글들이 설치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번져나갔다.

또한 청와대 청원게시판의 배너기 설치 반대 청원은 몇 시간 만에 1만명 이상의 지지를 받았고, 중구청 홈페이지에도 약 200건의 설치 반대 입장의 게시글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특히 이들 글들은 일본과의 단절은 국익적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중구청과 같이 지자체가 나설 경우 불매 운동을 정부에서 조장하는 것으로 비춰져 국제여론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날 중구청이 배너기를 설치하는 과정을 일본 방송사에서 취재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더욱 힘을 받았다.

더불어 이들은 공공기관인 중구청이 직접 불매 운동에 나설 때 WTO 협약 상 내국민대우 위반, 최혜국대우 위반, 수량제한금지 위반 등 소지와 국내법상 불공정무역행위 조사 및 산업피해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자칫 확산되고 있는 시민들의 불매 운동과 정부의 대일(對日) 정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배너기 설치 결정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서 중구청장은 이날 낮 시간 까지만 하더라도 ‘강행’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정부가 고군분투 하는 상황에서 민관을 따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SNS 상의 비판 주장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앞서 서 중구청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SNS에 “관군, 의병 따질 상황이 아니다. 왜 구청은 나서면 안되지요? 우선 전쟁을 이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라는 입장문을 썼다가 삭제하기도 했다.

서 중구청장의 입장은 일견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일본의 무논리‧일방적 경제보복 행위에 시민들의 불매 운동과 정부 대응에 힘을 보태고 싶었을 수 있다.

다만 서 중구청장의 패착은 배너기 설치 결정이 ‘선의’였다 할지라도 민심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이를 무시한 채 배너기 설치 강행이 ‘한 목소리’를 내는 취지라는 그의 주장은 모순이었다. 서 중구청장의 행위가 일본제품 불매 운동 분위기를 업는 ‘표심용 정치적 행정’이라는 일각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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