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상생 협력 구조 형성돼야

“비수가 날아와 꽂혔는데 포크를 들고 덤비는 기분이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말하며 한숨지었다.

일본 수출 규제 조치가 날아와 한국 산업계에 꽂혔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회사는 물론, 든든한 고객사를 두고 50년 이상 업력을 지속한 협력사들조차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전언이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보다 중소업계가 견디는 불확실성의 무게는 더 크다. 후방 업계는 전방 대기업과 달리 대체재 마련이 쉽지 않다. 거래처를 다변화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감당해야 할 비용과 시간도 부담이다. 최종 고객사인 대기업의 승인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재 변경 절차조차 까다롭다. 상위 업체에 납기를 맞춰야 하는 협력사 입장에선 제품 수급에 차질을 겪을 수 있어 고민이 크다. 국내 중소업계가 일본 규제 조치에 대해 ”알고도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정부의 추가적인 규제 가능성도 지울 수 없다. 중소업계가 보다 촉각을 다투는 지점은 ‘캐치올’ 규제 여부다. 캐치올 규제는 비전략 물자 품목 중에서도 대량살상무기 등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일본 정부가 특정 요건하에 수출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다. 모든 비전략물자 품목이 캐치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이 캐치올 대상 품목이라고 판단하면 개별허가를 받는다. 일본 정부가 우리 산업을 규제한다는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수출 통제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어 업계 우려가 크다. 

이 가운데 우리 정부는 후방 업계가 짊어진 불확실성을 덜겠다고 밝혔다. 가깝게는 올해 안으로 20개 소재, 장비, 부품 품목의 공급 안정을 지원하고, 앞으로 7년간 7조8000억원을 투입해 80개 품목의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다. 국내 기업의 기술 자립을 위한 인수합병(M&A) 자금 지원부터 산업을 옥죄는 환경, 노동 규제까지 완화하기까지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댔다. 

업계선 이번 대책을 두고 대체로 반기는 한편 장기적인 구심점을 갖추길 요구하고 있다. '7년'이라는 장기 지원을 약속한만큼 자금 수혈에 머무르지 않고 협력 구조를 다시 구축하길 바라는 분위기다. 부품 협력사 관계자는 “소재 국산화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기업 생산라인에서 양산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이다. 생산라인만 열어주면 6개월 안에 국산화 가능하다”고 자신하며 "그 동안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수 십년간 지속된 대기업 중심의 수직 계열화 구조는 한국 소자 업체들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오르는 동안 후방 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더 높게 쌓았다. 이번 사태가 '기회'가 되려면 정부 지원에 힘이 실려야 한다. 여기엔 대기업과의 공감대도 필수적으로 형성돼야 한다. 과거 양적 성장에만 그쳤던 지원책을 넘어 국내 협력 구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선 장기적인 구심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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