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생산 라인 개방 지원 필수적···6개월 안에 국산화 자신있어"
7년간 소재·부품·장비 자체 조달률 60%대로 정체·
반도체 27%, 디스플레이 45%로 5개 업종 중 최저 수준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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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소재‧장비‧부품 경쟁력 강화 대책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후방 업계가 반색했다. 특히 그동안 목말라했던 대기업 생산 라인 개방 지원 정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업계는 이번 정부 대책이 단순 자금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대기업과 후방 산업 간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일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해외 수입 의존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100대 품목에 대해 공급 안정망을 확보하고 향후 7년간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에 매년 1조원 이상씩 총 7조8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후방 업계는 이번 정부 지원책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그간 아쉬워햇던 '대기업 생산 라인 개방' 지원책에 대해 높은 실효성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산업부는 20대 품목에 한해서 소재‧장비‧부품 대체 제품의 적합성 테스트에 들어가는 재료비·인건비 등 소요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장기 사업으로 추진되는 80개 품목의 경우에도 수요 기업이 보유하거나 공동으로 활용할 양산 테스트베드 개방을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반도체사업의 경우 수요 기업의 생산 라인을 활용해 소재·부품·장비 성능 평가 시 소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납품하는 한 협력사 관계자는 "세제 지원은 사실상 보조적인 지원에 그친다"며 "가장 효과적인 국산화 전략은 대기업 생산 라인에서 양산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인데, 대기업 차원에선 그간 굳이 국내 업체에 양산 라인을 개방할 필요를 못 느껴 온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이슈와 정부 지원책을 통해 국산화 작업이 좀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이 생산 라인만 열어주면 일부 핵심 부품을 제외하고, 6개월 안에 국산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각에선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결국 ‘시간이 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R&D 사업의 추진력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는 입장이다. 정부는 과거에도 후방 산업 지원 정책을 펼쳤지만, 양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을 뿐 수요·공급 기업 간 진입 장벽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1차 협력사 관계자는 “최소한 내년 도쿄올림픽까지는 일본 규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과거와 같은 뜬구름 잡기 정책보다는 상당히 적극적인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소재를 개발하는 것이 단기간 안에 끝날 일은 아니다. 이번 대책에서도 장기적으로 이끌고 가는 구심력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은 지난달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산업부는 지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17년간 5개 업종 실태를 분석해 소재·부품·장비의 자체 조달률이 60% 중반에서 정체돼 있으며, 이 중 특히 반도체가 27%, 디스플레이가 45%로 조달률이 낮은 수준을 보였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자산업을 필두로 발달해왔으나,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가스·불산액·레지스트 등 첨단 화학소재는 해외 수입 비중이 높다. 디스플레이 역시 한국이 2004년 이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점했으나, 패널 기술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핵심 소재와 장비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도입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이에 정부는 일본 등 해외 의존도가 높아 공급 안정이 필요하다고 평가된 100대 소재·장비·부품 품목을 중심으로 국산화 및 대체재 마련을 지원하기로 했다. 100대 품목은 공급 안정이 시급한 20대 품목에 대한 단기 지원책과 80대 품목에 대한 장기 지원책으로 나눠 추진된다. 정부는 단기 지원 대상인 20개 품목의 연내 공급 안정화를 목표로 기업들의 수입국 다변화 등 대체재 마련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달 규제 대상에 포함된 3개 소재를 포함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등 20개 품목이 여기에 포함됐다. 이들 품목의 경우 국내 양산을 확대하기 위해 환경 관련 인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하며, 조기 기술 확보 등 지원에 올해 추경예산 2732억원이 투입된다. 

장기 지원 대상으로 꼽힌 80대 품목은 5년 내 국산화를 목표한다. 7년간 총 7조8000억원의 대규모 R&D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대기업과 공급사 간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협력 모델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네 가지 기술 협력 모델을 기반으로, 세제, 금융, 입지, 규제 완화 등 패키지 지원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여기에 해외 소재‧부품‧장비 기업 인수합병(M&A)과 해외 기술 도입 및 투자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자금도 투입된다. 

이를 통해 반도체산업의 경우 연내 5개 품목 대체재 발굴을 지원하고, 5년 내 8개 품목을 국산화한다는 계획이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연내 2개, 5년 내 9개 품목의 국산화를 지원한다.

전날 산업부 대책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전날 회의는 오늘(5일) 발표할 경쟁력 강화 방침을 관계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며 “이번 대책에는 산업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 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만큼 추진력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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