펙사벡 간암 병용치료 임상시험 중단 권고 공시···주가는 장 시작과 함께 하한가
올해 초 CB 투자 나선 이들 ‘날벼락’···다른 적응증 임상에서 반전 가능성은 있어

신라젠 주봉 기준. / 그래프=시사저널e.
신라젠 주봉 기준. / 그래프=시사저널e.

코스닥 대표 바이오주인 신라젠이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신라젠의 핵심 항암 신약인 펙사벡이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Independent Data Monitoring Committee·DMC)로부터 임상시험 중단 권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펙사벡이 간암 병용치료에선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투심이 급격하게 얼어붙었고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펙사벡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반 주주뿐만 아니라 신라젠 전환사채(CB) 투자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로선 보통주 전환을 통한 수익은커녕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졌다. 다만 다른 적응증에서 펙사벡이 유의미한 결과를 낼 경우 반전의 여지도 있어 향후 신라젠의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 신라젠 주가 하루 새 29.97% 하락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닥 시장에서 신라젠 주가는 개장과 동시에 가격 제한폭까지 떨어졌다. 전날 4만4550원에 마감했던 주가가 하루 새 29.97% 내려 3만1200원까지 밀린 것이다.

신라젠의 항암 신약 펙사벡에 대한 임상중단 권고 공시가 주가 급락의 원인이었다. 이날 오전 신라젠은 펙사벡 신약의 간암 대상 임상3상 시험 관련 무용성 평가 결과 미국 DMC로부터 ‘임상 중단’ 권고를 받았다고 공시했다. 무용성 평가는 개발 중인 의약품에 가치가 있는 지를 따져 임상시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내 독립기관인 DMC가 이를 주관한다.

이번 임상 3상은 진행성 간암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펙사벡을 종양에 투여한 후 기존 간암 치료제인 ‘넥사바’를 투여한 300명과 펙사벡을 사용하지 않은 넥사바 단독 투여군 300명의 생존율을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신라젠은 2015년 10월부터 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해 왔다. 당초 계획된 임상 완료 시점은 2020년 12월이었다.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펙사벡은 암세포에 침투해 증식한 뒤 세포를 터트리는 동시에 주변 면역세포의 활성도를 높이는 작용기전을 가진 것으로 소개됐다. 이에 따라 펙사벡을 투여할 때 넥사바의 치료 효과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번 무용성 평가에서 임상 중단 권고를 받음에 따라 이번 간암 임상 3상에서는 펙사벡의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셈이 됐다. 

◇ 증시 입성 후 최대 위기···CB 투자자들도 발등에 불

펙사벡의 미래를 기대했던 신라젠 투자자들에게 이는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결과다. 2006년 설립된 신라젠은 펙사벡에 대한 기대를 업고 2016년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후 바이오주 투자 열풍이 더해지면서 신라젠 주가는 2017년 11월 21일 장중 15만2300원까지 급등했다. 이는 공모가 1만5000원에서 10배가량 오른 금액이다. 

하지만 이후 주가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다 올 들어선 주가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신라젠 주가는 올 1월만 하더라도 7만원대에서 거래됐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코오롱티슈진의 인보사 사태 등에 바이오주 투자심리가 위축된 데다 펙사벡 무용성 결과 발표가 미뤄지는 데 따른 우려가 겹쳐 나타난 결과였다. 지난달 초에는 신라젠 현직 임원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보유 주식을 전량 매도하면서 시장의 의구심이 더욱 커지기도 했다.

결국 시장의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당장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특히 올해 초 CB 투자에 나선 투자자들도 날벼락을 맞게 됐다. 지난 3월 키움증권은 신라젠의 CB 발행 대표 주관사로 1000억원의 CB를 총액 인수했는데, 키움증권에 따르면 이 중 일부 물량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셀다운했다. 이들 CB 투자자도 펙사벡의 성공을 기대하고 투자한 것이나 다름없어 큰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실제 지난달 22일 조정된 전환가액 4만9078원은 현재 주가인 3만1200원과 괴리가 크다. 펙사벡에 부정적 이슈가 발생하면서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떨어져 있다. CB 투자자들은 펙사벡 무용성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올 경우 만기(2024년 03월 21일) 이자율 6%를 받을 수 있다는 조항을 두었지만, 신라젠이 원금을 상환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펙사벡의 신뢰성이 떨어진 현 시점이라면 외부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라젠은 최근 3년 동안 연간 영업손실, 순손실을 내고 있어 자체적인 자금 마련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펙사벡은 신라젠의 핵심 파이프라인이다. 그동안 신라젠은 펙사벡이 향후 벌어들일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만일 펙사벡의 신약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신라젠이 새로운 자금을 조달하거나 빌린 자금을 상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신라젠의 파이프라인 8개 중 7개는 펙사벡에서 파생된 것이다. 

다만 반전의 가능성은 아직 존재한다. 간암 외 다른 적응증 관련 임상시험에서 성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신라젠은 미국 리제네론과 2017년 5월 신장암 치료제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해 펙사벡과 세미플리맙의 병용치료법 임상1b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또 미국 국립암센터가 주도하는 대장암 대상의 임상 1상, 분당차병원과 함께 진행 중인 간전이 임상 2상 등도 남아 있다. 이 임상들은 이번 권고 중단된 임상과는 다른 방식인 면역관문억제제와 병용투여하는 것으로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신라젠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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