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수출 규제 이견 커···日, 美의 중재역에도 강경모드

일본 정부가 2일 오전 각의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일본 정부가 2일 오전 각의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일본 정부가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각의(국무회의)서 통과시키면서 우리나라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외교장관이 회담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이 발표나기 하루 전인 지난 1일, 한·일 외교장관은 태국 방콕에서 만나 55분간 회담을 가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회담에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할 것을 요청하면서 양국 관계에 올 엄중한 파장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

◇日정부, 韓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

그럼에도 일본은 여전히 강경모드를 고수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의 지난 1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대한 배상은 완전히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기업들의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할 경우 더 큰 보복조치 등을 취하게다고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은 강경모드를 고수하며 결국 2일 각의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주무 부처 수장인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총리가 연서한 뒤 공포 절차를 거쳐 그 시점으로부터 21일 후 시행된다. 내주 중 공포가 이뤄질 것으로 보여 시행 시점은 이달 하순이 유력하다.

화이트리스트는 일본이 첨단 소재 및 전자 부품 등을 수출할 때 심사에서 우대하는 안보 우방 국가로, 지정되면 3년 간 개별 수출 허가 신청에서 면제된다. 수출심사 우대가 사라지면 전자·철강·화학·자동차 등 1100여 개의 한국 수출 물품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뀌는데, 이 심사는 최장 90일까지 소요된다.

일본 정부가 일본 제품의 한국 수출을 통제하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명단에 한국을 포함시키면서 한일 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중단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강경화 장관은 지난 1일 고노 다로 외무상과 회담 후 “각의 결정으로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결정이 나온다면 우리로서도 필요한 조치, 대응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로 안보상의 이유를 들고 있는데, 한·일 안보의 틀에서 여러 가지 요인들을 우리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강 장관의 발언은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빼는 결정을 강행하면, 지소미아 파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미·일 외교장관 회동, 미국 역할에 주목

이제 시선은 2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간 오후 6시30분)부터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으로 옮겨졌다. 이 자리에서 미국이 한·일 양국의 중재역할로 적극 나선다면 화이트리스트 배제안의 공포 및 시행이 미뤄질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일 외교장관의 회담이 종료된 후 “우리는 그들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길 바란다”며 중재 의사를 적극 밝혔다. 앞서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지난 1일 양자회담을 가졌지만 양쪽의 이견만 확인한 채 사실상 빈손으로 끝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20일 한일 수출규제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이 나에게 관여를 요청했다”며 “아마도 (한일 정상) 둘 다 원하면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수출규제 추이를 지켜보면서 두 정상이 원한다면 개입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미국은 우선 한·일 어느 편도 들지 않은 채 중립을 유지하면서 휴전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사히신문의 2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일본에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같은 경제제재 추가 조치를 진행하지 말라고 요청하면서 한국에는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을 현금화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미국이 적극 관여하더라도 일본 정부의 실질적인 입장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지난 1일 “미국의 (중재) 노력에도 일본이 좀처럼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파악한다”며 “미국이 중재라는 단어는 쓰지 않지만 원만하게 사태가 해결되길 바라며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제외시키면서 미국의 ‘휴전 요청’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는)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계속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할 생각”이라며 “한·일 관계는 한국 측으로부터 부정적인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탓에 상당히 엄중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에는 일본의 일관된 입장과 다양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고 있으며 평소에도 (미국과) 긴밀히 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미국의 행보에 일단 기대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이번 결정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상황반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신속한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WTO 제소와 함께 양자·다자 차원에서의 통상대응을 전개하면서 조기 물량 확보, 대체수입처 발굴, 핵심 부품·소재·장비 기술개발 등을 위해 범부처의 가용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철회를 목표로 한·일 정부 간 협의는 물론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여론 환기, WTO 등 국제기구를 활용한 국제여론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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