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대기업에 비해 공급선 다변화 어려워···수입 지연 시 납기 못 맞출까 걱정
“대기업과 협력사 간 공감대 필요” 주장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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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협력사 간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일본이 한국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를 현실화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은 물론 중소 협력사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특히 중소기업계는 일본 정부가 ‘캐치올’ 규제 등 추가적인 조치로 비전략 물자 품목으로까지 수출 통제를 확대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2일 교도통신 등 외신은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조치는 오는 7일 공포된 뒤, 28일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일본 기업은 전략물자 1120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일본 경제산업성으로부터 각 건별로 개별허가를 받게 된다. 전략물자란 군용 무기로 활용될 수 있는 산업용 물품 및 기술을 말한다. 전략물자는 민감 품목(263개)과 비민감 품목(857개)으로 구분되는데, 일본은 화이트리스트 명단에 오른 국가에 비민감 품목을 수출할 때 일반 포괄허가를 받도록 우대했다. 일반 포괄허가 방식으로 심사를 받으면 처리 기간은 1주일가량 걸리고 유효 기간은 통상 3년에 달한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인해 일본 기업은 한국에 전략물자 비민감 품목을 수출할 때 개별허가 방식으로 일본 정부의 심사를 거치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처리 기간만 90일가량으로 늘어나고 유효 기간은 6개월로 단축된다. 3년마다 받던 수출 허가를 6개월마다 각 건별로 받게 되는 것은 물론 신청 서류도 늘어나게 된다. 

지난달 1일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내 전자업계는 백방으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앞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공정에 사용되는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를 국산 제품으로 대체하는 노력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국내 소재기업을 통해 불화수소 등 샘플을 공급받아 시제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중소업계는 전방 대기업과 달리 대체재 마련이 어렵다. 거래처를 다변화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당해야 할 비용과 시간도 부담이다. 여기에 최종 고객사인 대기업의 승인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재 변경 절차가 까다롭다. 이에 업계 일각에선 “일본 규제 조치를 알고도 당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소기업은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인 사업 축소를 더 우려한다. 국산 업체로 수혜가 집중될 것이란 전망은 일부 업체에만 해당되는 ‘남의 일’이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경기도 소재 삼성전자 협력사는 지난달 일본의 규제 조치 발표 이후, 기존 원자재 재고를 추가적으로 확보하고 원자재에 들어가는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기 위해 하위 원자재 공급사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전자부품이라는 게 소재 하나가 바뀌어도 영향을 받는다”면서 “제품마다 다르긴 하지만, 원자재에 들어가는 소재를 바꿀 경우, 관련 공정에 쓰이는 파이프, 탱크까지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정말 디테일하게 공정 조건까지 바뀔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여러 소재를 조합해서 원자재가 만들어지는데 이 중 일본산 소재를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려면 수개월이 걸린다”며 “결국엔 소재를 바꿔도 최종 고객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도 굉장히 조심스럽다. 이 같은 어려움에 대해서 대기업과 공급 업체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소업계는 ‘캐치올’ 규제 등 일본의 추가 규제 가능성을 더욱 우려하는 분위기다. 캐치올 규제는 비전략 물자 품목 중 대량살상무기 등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특정 요건하에 수출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다. 모든 비전략 물자 품목이 캐치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이 캐치올 대상 품목이라고 판단하면 해당 일본 수출업체에 수출 허가를 받을 것을 통보한다. 일본 정부가 우리 산업을 규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수출 통제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어 업계의 우려가 큰 상황이다.

전략물자관리원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비전략 물자 품목에 대해 대부분 모든 나라에 수출 허가를 내주고 있다"면서도 "문제는 일본 정부가 보복 차원에서 추가적인 규제를 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것을 현재로선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달 초 3개 소재 품목에 한해 수출규제를 강화한 것처럼 산업을 규제하기 위한 추가적인 수출 통제가 이뤄질 수 있어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상위 업체에 납기를 맞춰야 하는 협력사 입장에선 제품 수급에 차질을 겪을 수 있어 고민이 크다. 한 전자부품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캐치올 규제까지 하면서 수출 통제 품목을 확대할 경우, 소재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납기를 못 맞추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1, 2차 협력사까진 상황을 파악하며 대응하는 것 같다. 만약 3차 협력사에서 수급 문제가 발생하면서 납기를 맞추지 못하면 상위 업체는 물론 전방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업계는 업체별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수출 통제 조치 이후 실질적인 수출입에 대한 사례 정보가 축적돼야 명확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LG전자에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한 업체의 관계자는 “이제 막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회사들은 물론, LG·삼성전자에 납품하는 50년 넘는 업력을 가진 협력사들조차도 이런 규제에 대응책을 명확히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결국 한국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한편 관련 당국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부터 '일본 수출규제 대응 태스크포스'를 가동 중이다. 전국 12개 지방청에 일본 수출규제 애로 신고센터를 설치해 운영 중이며, 수출규제로 피해를 입는 중소기업들에 긴급경영안정자금도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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