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 우산뺏기’ 대신 피해기업 지원 고려해야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직접적 보복 대상이 된 반도체 업계는 물론이며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식품, 유통, 여행 산업 등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곳이 바로 은행권이다. 일본계 자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저축은행 업계나 소비와 직결돼 있는 카드업계만 해도 일부 불안요소를 안고 있지만 은행권은 일본 의존도가 극히 낮기 때문에 리스크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 규모는 52조9000억원이며 이 중 은행이 조달한 외화차입금은 10조6000억원 수준이다. 우리나라 은행의 총 자산이 2687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계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이 안정돼 있어 일본이 돈을 안 빌려줘도 얼마든지 다른데서 돈을 빌릴 수 있다”며 “국내 은행 또는 기업에 신규 대출이나 만기연장을 안해줄 수도 있는데 대처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은행 내부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은행 내 보유 중인 일본계 자금이 많지 않기 때문에 큰 위험이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제는 리스크 관리다. 일부 기업 대출 고객들이 한일갈등의 영향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신 리스크 관리에 보다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기업 고객의 경우 무역 규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넘어 직접적인 금융지원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비오는 날 우산뺏기’식 영업을 할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고객들에게 만기 유예, 추가 대출 지원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행히 1일 김도진 중소기업은행장이 창립 58주년 기념식에서 “일본 수출 규제와 관련해 중소기업 금융 시장이 위축되지 않도록 선제적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며 최종구 위원장도 오는 3일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관련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지원방안까지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최 위원장이 각 은행장들에게 피해기업 지원 방침 등을 당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난 상반기 국내 시중은행들은 불안한 대내외 경제 상황에서도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은행 자체의 노력과 함께 개인, 기업 고객들의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은행들이 한일 갈등 속 ‘근거있는 그들의 자신감’을 기업고객들에게 나눠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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