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고양이 ‘모그’의 엄마
  • 하은정 우먼센스에디터 / 글ㆍ박사(북 칼럼니스트)(brandcontents@sisajournal-e.com)
  • 승인 2019.08.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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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커(1923~2019)는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의 ‘엄마’다. 책의 저자라는 면에서도 그렇고, 실제 모델인 모그를 키웠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사진=김정선
사진=김정선

 

총 17권인 ‘모그 시리즈’의 모델이 된 고양이는 모그만은 아니다. 주디스 커는 이후로도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키웠다. 그렇지만 첫 번째 고양이인 모그는 이름뿐 아니라 다양한 표정, 달걀과 생선 그리고 토끼 장난감을 좋아하는 취향, 머리카락을 핥는 특이한 습관까지 책의 주인공 ‘모그’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덕분에 모그를 자신의 고양이로 여기는 세계의 수많은 아이들을 가족으로 만들었다. 모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족이 많은 고양이 중 한 마리가 아닐까.

모그도 죽고, 모그의 ‘엄마’인 주디스 커도 죽었다. 모그가 먼저였다. 모그가 죽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하자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한다. 그럴 만하지 않겠는가. 인기가 엄청난 캐릭터인데. 그러나 어린 독자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고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거라며, 작가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02년 <모그야, 잘가>가 출간됐을 때 주디스 커는 이렇게 말했다. “전 이제 80세가 됩니다. 남겨두는 사람들, 자식들, 손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기억하세요. 저를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세요.”

이 말은 주디스 커 본인의 유언이기도 했으나 죽음은 그에게 좀 더 시간을 주었다. 올해 5월에 95세의 나이로 영면하였으니, 이후 16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 셈이다. 그 시간 동안 주디스 커는 급격한 부침을 겪었다.

2006년 평생 각별하게 서로 아끼고 지지하며 지냈던 남편 나이젤 닐을 잃고 일 년 정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에 빠져 있던 그는 회복 이후 엄청난 일 중독자가 됐다고 한다. 이후에도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했던 그는 죽기 불과 나흘 전에 한 인터뷰에서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죽기 직전까지 한 달 뒤 나올 예정인 신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고 하니 저자로서, 또한 독자에게도 복된 삶이다.

그는 모그 시리즈와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 <카틴카의 조금 특별한 꼬리> <행복해라, 물개> 등 다양한 그림책으로도 명성을 얻었지만 자신의 삶을 그린 반자전적 소설 시리즈로도큰 주목을 받았다. 히틀러의 폭정으로 인해 정처 없이 쫓겨 다녔던 그의 어린 시절은 전쟁과 독재의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아웃 오브더 히틀러 타임(Out of the Hitler Time)> 시리즈는 전세계에 수백만 부가 판매됐고, 1974년에는 ‘독일 유스북 상(Geman Youth Book Prize)’을 수상하고 학생들의 필독서로도 지정됐다.

그는 유명한 극작가, 신문 칼럼니스트인 아버지와 작곡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 시기는 길지 않았다. 국가사회주의 정책에 격렬히 반대하던 아버지는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되고 나치당이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날뛰자 급히 프라하로 탈출했고 뒤늦게 어머니와 오빠, 주디스 커도 스위스로 탈출해 아버지와 재회한다. 그 후의 삶은 오랫동안 신산했다. 독일에서는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두 번째로 이름이 올라 책이 불태워지며 유명세를 치른 아버지가, 그들이 쫓겨 다닌 스위스와 프랑스, 영국에서는 무명의 글쟁이에 불과했다.

부유하게 자란 어머니는 이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는데, 가족 동반 자살을 계획할 만큼 괴로워했다. 그 와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그들의 생명은 다시금 위태로워졌다. 전쟁이 끝난 후주디스 커는 런던의 예술공예학교에 무역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게 되는데,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일”이라며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 후 주디스 커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순탄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작가로 데뷔한다. 그리고 쫓겨 다니며 사는 동안 내내 원하던 고양이를 키울 수있게 된다. <고양이 모그>의 첫 모델인 바로 그 고양이를. 그렇게 삶은 다른 문을 열어준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가 서로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라면 주디스 커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현재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 경북교통방송의 <스튜디오1035>에서 책을 소개하는 중이며, 매달 북 낭독회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 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이 있다.

 

우먼센스 2019년 7월호

https://www.smlounge.co.kr/woman

에디터 하은정 박사(북 칼럼니스트) 사진 김정선

하은정 우먼센스에디터 / 글ㆍ박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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