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접할 때 특정 기업의 문제만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지배구조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한 기업의 사안이 어느 순간 ‘경제 전체’의 문제가 된다. 반대로, 경제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나면 한 기업의 일이라도 다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지배구조와 관련된 사안들은 여러가지 사정과 논리들이 얽혀 있어서 복잡하기 마련인데, 이럴 땐 오히려 ‘기본’에서 봐야 명쾌하다. 똑같은 안건이라도 경영자, 주주, 직원 등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민감한 기업지배구조 문제일수록 다양한 관점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사안은 다른 회사들도 고려하자

개별 기업에서 시작한 문제일지라도 중요한 사안일수록 시장 전체에 미칠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 한 기업의 행동이 다른 기업으로 전파되면서 점차 하나의 관례로 자리잡고, 이에 대응하는 규제가 생기면서 결국 한국 경제 전체의 특성이 되기 때문이다.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10대 그룹 상장사들의 행동은 특히 중요하다. 실제로 기업의 승계 방식은 하나의 공식처럼 활용되어 왔다. 예컨대, 90년대 말 경영권 승계에 활용된 분리형 BW는 이후 많은 상장사들의 승계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어 오다가, 15년이 지난 후에 사모 발행은 금지되었고 현재 공모만 허용된다. 긍정적인 변화 또한 전파된다. 삼성, 롯데, 현대차 그룹 등 최근 지배구조 개편을 마쳤거나 진행 중인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주주환원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늘려 나가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특정 회사의 지배구조 문제가 중요한 사안일수록,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과 전체 시스템을 고려하고 선순환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민경제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개별 항목들도 세계 경제 규모 12위인 한국의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문제가 좀더 무겁게 다가온다. 한국의 회계 감사 순위는 세계 63위, 소액주주 보호 99위, 이사회 효율성 109위, 노사관계 130위이다. 보다 직관적인 이해를 위해 2017년 같은 GDP 순위 국가들을 대응시켜 보자. 63위 슬로바키아, 99위 잠비아, 109위 보스니아, 130위권에 몽골, 르완다, 콩고 등이 속한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저개발국 또는 엄청난 사상자들이 발생하거나 내전을 겪는 나라들의 수준이라는 것이 놀랍다. 경제가 뭔가 불균형 상태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질적 수준과 정신 문화는 함께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여기서 시대적 맥락을 놓치지 말자. 한국은 1950년대만 해도 세계 경제 순위 100위권의 극빈 국가였고, 먹고 사는 게 먼저였다. 눈 앞의 경제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대응하며,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금지와 허용을 반복해 온 출자총액제한제도, 지주회사 제도, 순환출자 제도 등 법 제도들의 변화무쌍한 개정들이 이를 방증한다. 현재의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현대 경제사의 관점에서 보면 결코 정부나 기업 중 어느 일방만을 탓할 수 없다는 걸 수긍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1인당 GDP 3만불 시대의 선진국 문턱에 서 있다. 현재 지배구조 문제를 직시하고 보수 진보의 대립을 넘어 어떻게 보다 나은 지배구조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성장’ 중심의 개발도상국 기업지배구조와 ‘신뢰’ 중심의 선진국형 지배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본질에 집중해야 명쾌하다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사안은 법과 제도, 오너, 이사회, 분할, 합병, 더 나아가 사회와 환경 문제까지 엄청나게 많고 또 광범위하다. 복잡한 만큼 최대한 문제의 ‘본질’로 접근해야 지향점이 선명해 진다. 본질은 정의에서 도출한다. 기업지배구조의 문제를 간단히 정의하면, 기업 내외부인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기업에는 ‘대리인 비용’을 발생시키고, 시장에는 ‘구성의 오류’를 초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회사에 대한 지배권 남용으로 대주주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주주에게는 피해를 입히고, 사회 전체로는 엄청난 마이너스가 되어 결국 모두의 손해로 되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본질은 ‘권한과 책임’의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하면, 국내 10대 그룹 기업 총수들은 0.8%의 소유 지분으로 58%를 지배하며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총수가 회사의 법적 책임 주체로서 이사로 등재한 비율은 5.4%에 불과하다. 엄청난 권한 대비 책임은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원활한 경영과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 기업 내부에는 ‘이사회’가 있다. 하지만,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분석에 의하면 지난 4년간 보류 또는 부결을 포함한 이사회에서의 안건 영향력은 0.3%에 불과했다. ‘이사회의 역할’이 절실하다. 최종적으로는 기업 외부에서 주주들이 견제할 수 있으나, 2018년 기준 기관투자자의 주총 안건 반대율은 4.4%, 부결율은 2.7%에 불과하다. 주주총회 기능의 정상화가 시급한 이유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최근의 법 제도 개정이나 여러 동향들이 명쾌하게 다가온다. 상법, 공정거래법과 자본시장법의 기업 관련 개정안들, 자산2조원 이상 상장사의 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금융위의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 스튜어드십 코드, 다중 대표소송제도나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의 움직임들도,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이미 투자의 필수요소로 정착된 ESG도 결국 ‘건설적인 견제’를 통해 기업과 사회의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함이다. 여기서 지향점은 하나,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의 지속적인 동반 상승이다. 경제 선진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다양한 관점의 통합으로

한 기업의 지배구조는 나라마다, 산업마다, 기업의 특성마다 모두 다르다. 게다가 기업은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활동한다. 기업 지배구조 문제가 특히 격렬한 논쟁거리가 되고 감정으로 치닫는 것도 서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이해관계 마저 첨예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 기업지배구조의 사안들을 볼 때, 해당 기업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과 시장 전체의 입장에서도 바라보자. 현재 상황 뿐 아니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사연도 들어보고, 향후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도 따져보자. 복잡할 땐 핵심에만 집중해보고, 회사의 입장 뿐만 아니라 직원, 주주, 사회와 정책 당국의 편에도 서 보자. 목표는 명확하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한국 경제가 선진국형으로 도약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잘 살기 위함이다.

관점은 곧 하나의 세상이다. 다양한 관점들을 고려하면 시야가 넓고 깊어진다. 보다 온전한 결론에 이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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