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 사회적 합의 아닌 경사노위 공익위안 바탕···단협 유효기간 확대, 사업장 점거 제한 등 경영계 요구 수용

자료=고용노동부,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 자료=고용노동부, 이미지=조현경 디자이너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정부안은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 합의를 이루지 못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바탕으로 했다. 여기에는 단협 유효기간 확대, 사업장 점거 제한 등 경영계 요구가 수용됐다. 이에 노동계는 정부안이 ILO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반발했다.

30일 고용노동부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의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등 3개 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노동부는 3개 법 개정안을 31일 입법예고한다. 이어 입법예고 기간 이후 의견 수렴을 해 법안을 확정한다. 이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가 발표한 3개 법 개정안은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주로 반영했다. 공익위원 권고안은 당시 경사노위 노사의 동의를 받지 못해 사회적 합의가 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발표한 3개 법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실업자와 해고자는 산별 노조를 포함한 초(超)기업 노조에는 가입할 수 있고 기업별 노조에서도 단체교섭 등에는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개정안은 이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개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활동이 기업 운영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업장 출입과 시설 사용 등에 관한 노사 합의나 사업장 규칙 등을 지키도록 했다.

노조 임원자격은 자율적으로 결정(규약)하도록 했다. 그러나 기업별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해 기업별 노조 임원은 재직자로 한정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을 없앴다. 다만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더라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해 과도한 급여를 주지는 못하도록 했다. 현행 근로시간면제 제도의 기본 틀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 또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경우 사업장 내 생산 시설과 주요 업무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경영계가 요구해왔던 사안들이다.

정부안은 교섭절차와 관련해 현행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의 개별교섭 동의 방식은 사용자 임의에 따른 교섭 상대방 선택으로 노사관계에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사용자가 개별교섭에 동의할 경우 모든 노조에 대한 성실 교섭과 차별 금지 의무를 부여했다.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 개정안은 퇴직 공무원과 교원, 소방 공무원, 대학 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도록 했다.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가입도 허용하되 직무에 따라 지휘·감독이나 총괄 업무를 주로 하는 사람은 가입을 제한했다.

◇ 노동계, 정부안에 반발···경영계는 “기업 어려움 커져”

이러한 ILO핵심협약 비준 정부 개정안에 대해 노동계는 ILO핵심협약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반발했다.

우선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과 노조 쟁의행위 시 사업장 내 생산 시설과 주요 업무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에 대해 지적했다. 이는 경영계가 요구해왔던 사안들로 공익위원안을 통해 정부안에 최종 반영됐다.

한국노총은 “정부는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근거로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제98호)과 강제노동 금지 협약(제29호)과 무관한 단협 유효기간 확대, 사업장 점거 제한 등 재계의 부당한 요구를 정부입법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며 “정부입법안 내용은 ILO핵심협약에 한참 미달한다. ILO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해 본말을 전도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의 조합원 및 임원 자격에 대한 법적 제한,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제한, 노조전임자 활동 및 근로시간면제한도에 대한 입법적 개입 등은 ILO 핵심협약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라며 “정부입법안의 바탕이 된 공익위원안은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 결코 합의할 수 없었던 내용이다. 정부는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한 노동법개악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 측도 “ILO 핵심협약과는 상관도 없는 사업장 점거 금지, 단협 유효기간 연장은 ILO 헌장과 협약 위반이다. 명백한 노동개악이다”며 “조합원의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사업장 출입에 개입하고, 조합 임원의 재직 여부를 따지겠다는 것은 ILO 결사의 자유 협약에 대한 역행이다”고 밝혔다.

특히 노동계는 정부가 국회 비준과 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관련 입법을 국제 기준에 맞추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경영계가 요구하고 있는 사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에 지금의 정부안에 경영계 요구가 더 반영될 수 있다”며 “이에 정부는 ILO핵심협약 비준부터 하고 이 후에 국제 기준에 맞춰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계는 반대로 ILO핵심협약 관련 정부안이 노동계 중심이라며 반발했다.

경총은 “현재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다른 나라와 달리 기업별노조 중심의 틀 속에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대립·투쟁적이고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노동운동 관행이 있다. 이에 고비용·저생산성의 산업구조에 봉착돼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안대로 해고자·실업자 노조 가입이 허용된다면 자동적으로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도 보다 강화돼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와 근로시간면제한도 완화에 관한 사안도 노사관계의 건전한 발전과 도덕적 해이 방지 등의 차원에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며 “생산활동 방어 기본권 차원에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 등도 반드시 연계해 해결돼야 한다. 향후 정부 입법 과정과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경영계 입장을 적극 개진하고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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