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을 토대로 한 영화 등 다양한 2차 생산물 등장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인터넷 소설 ‘트와일라잇’의 팬픽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트와일라잇 또한 인터넷 소설이었으니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팬들이 임의적으로 이용해 또 다른 세계관을 구상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 셈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소설 모두 영화화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한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영화 ‘북클럽’을 보라).  2019년 8월에 국내 개봉을 예정한 ‘애프터(After)’는 놀랍게도 보이밴드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영국 밴드 ‘원 디렉션’ 멤버인 ‘해리 스타일즈’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인 애프터는 무료 창작·유통 플랫폼인 왓패드에서 2013년도부터 연재됐다.

안나 토드는 애프터를 통해 일약 스타작가 반열에 울랐으며, 영화화로 2차 저작권이 이뤄져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놀랍게도 애프터의 영화화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팬픽’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다수가 애프터와 마찬가지로 아이돌 멤버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물론 장르는 다를지라도). 남자 주인공인 하딘의 역할을 맡은 히어로 파인즈 티핀은 영국출신으로, 심지어 해리 스타일즈의 스타일을 너무나도 명확하게 영화에서 연기한다. 

문화비평가인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문화적 변화가 다양한 비율로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바 있다. 윌리엄스는 그의 책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에서 잔여적인 것이란 “지배적 문화에 의해 무시되거나 평가 절하, 혹은 적대되어왔고, 억압되거나 아예 인지되지도 못했던 인간의 경험이나 소망, 성취의 영역(1977)”이라고 말한바 있다. 

‘잔여’ 혹은 ‘잔여가치’라는 용어는 문화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경제적 의미 또한 끌어낸다. 헨리 젠킨스는 스프레더블 미디어에서, 레이몬드 윌리엄스의 ‘잔여물’에 대해 “콘텐츠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팬들의 활동을 통해 미디어 자산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다시 말해, 잔여적인 것들 중 하나가 팬들의 활동을 통해 콘텐츠의 유통 기한을 연장하거나, 그것을 새로운 시장에 공개함으로써 콘텐츠의 잠재적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관계자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찾기 위해 이전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던 영역을 새로이 들춰내고 시장에 소개한다. 특히 이용자들의 소비방식과 패턴을 살피다보면, 팬 자체의 텍스트와 콘텐츠, 그것들을 소비하는 대규모의 또다른 팬덤을 관찰할 수 밖에 없고, 그로인해 확산되는 콘텐츠에 주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트와일라잇이 원본이라면, 그것의 제 2차 생산물인 그레이의 50가지가 그림자가 그랬고, 텍스트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 해리 스타일즈의 팬덤, 그리고 팬이 생산해낸 애프터라는 YA(young adult)팬픽(혹은 소설)에 주목한 것도 그것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을 소설 캐릭터로 창조해내고, 그 캐릭터를 다시 다른 배우가 연기하게 돼 영화로 소비되는 방식은 이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끝까지 양지로 끌어내려하지 않았던 텍스트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메인 스트림이 돼가는 과정은 우리가 이전까지 경제적 구조에서 파악하지 못했던 팬덤의 생산·이용 패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전까지 비가시화됐던 콘텐츠의 상업적 가치의 확산은 우리에게 잔여물이 더 이상 ‘잔여물’로 잔존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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