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으로 개인 배상청구권 소멸 안 돼···일본 정부가 이미 인정”
“일본, 한국 대법원 판결로 회피해온 식민지배 불법성 맞닥뜨려”

일본 아베 정권은 지난 4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에 나섰다. 이어 일본은 한국의 캐치올 제도가 불충분하다며 우호국에 수출통관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이러한 조치에 나서는 이유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 체계 불충분 등을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아베 정권의 도발은 오랜 기간 준비한 전략이며 장기 계획으로 평가된다. 근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식민지 문제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베 정권은 그동안 회피해왔던 한국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를 맞닥뜨렸다. 한국 대법원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배상청구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확정 판결했다. 일본 국가 권력이 관여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관한 내용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담기지 않았다는 판결이다.

특히 아베 정권은 남북미가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고 평화체제를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한국에 도발했다. 동북아시아의 냉전 상태와 북한 위협을 이유 삼아 전쟁 가능 국가가 되려했던 목적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베 정권의 의도와 전략을 오랜 기간 관찰하며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학자가 있다.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장(국제법 박사)이다. 시사저널e는 25일 도 센터장에게 일본의 도발 의도, 개인 배상청구권이 한일협정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의미, 대응책 등을 물었다.

아베 정권은 전략물자 관리 부실 의혹을 제기하며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했다.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베 정권은 국제통상법 등을 이용해 한국을 국제법 위반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를 통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요구를 희석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수법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4년 한일 양국의 국장급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원포인트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은 느닷없이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 수입을 규제하고 있는 한국에 철폐를 요구했다. WTO(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이 대원칙이나 자유무역 원칙에 대해 일반적 예외를 규정하고 있다. 바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다. 여기에는 자유무역의 예외 사항으로 수출입이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문제가 발생하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후쿠시마 방사능 수산물 수입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다.

당시 정부의 수입 규제 조치는 국제통상법에 명시된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는 원포인트 회담 자리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이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천박하고 얕은 의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기어이 이 문제를 WTO에 제소했다. 그러나 올해 4월 최종 패소했다. 한국이 원전사고가 난 일본에 가까이 위치한 국가로서 잠재적 위험에 따른 한국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고려해 일본산 식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가 타당하다는 판정이었다. 패소한 일본은 오히려 WTO에 문제가 있으니 이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상황도 이 연장선에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한국에 반도체 산업의 소재 등에 대해 수출을 규제했다. 이는 아베 정권이 식민지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한국 식민지배 문제를 덮으려는 아베 정권의 근본 목적은?

아베 정권이 갖고 있는 정책 기조는 2차 대전 이후 체제로부터 벗어나려는 탈각과 역사수정주의다.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평화체제로 인해 일본은 전수방위만을 내용으로 한 평화헌법 체제에 있다. 전쟁 자체를 못하게 돼있다. 평화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가 일본에 최소한의 규제 장치를 마련해놓은 것이다. 아베 정권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불법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등 해결하지 못한 모든 과거사 문제가 합법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위안부’ 문제 모두 합법적이며 이미 종결된 것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이는 오늘날 국제인권법이 제기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국제사회가 평화공동체를 지향하며 형성해온 소극적 평화는 전쟁의 방지이며, 적극적 평화는 바로 인권 보호를 통한 인류 복지의 구현이다.

일본이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평화헌법 체제를 탈각해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과 잘못에 대한 반성 없이 역사 자체를 수정하겠다는 것은 2차 대전 이전 일본이 추구했던 식민제국주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일본은 식민지배 역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두 가지 주요 주장은 ‘식민지배합법론’과 ‘한일협정완결론’이다. 1910년 강제병합조약을 통해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한국을 식민지배 했다는 것이다. 또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모든 문제가 최종적으로 완전히 종결됐다고 주장한다.

우선 식민지배합법론은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다. 국제법상 조약은 대등한 국가들이 형식·절차에서 있어서 합법적으로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한국을 침략한 상태에서 대등한 국가로 보지 않았고 한국인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이것은 국제법상 무효다. 일본은 그러한 불법적 식민지배 공간 속에서 침략전쟁인 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총동원령을 내렸다. 이에 강제징용 피해자와 성노예 피해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생겼다. 이는 인권에 대한 중첩적이자 중대한 피해다.

불법 식민지배 하에서 지금까지 치유되지 못한 피해자의 침해된 인권은 구제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 부분들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배상 청구권이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주장은 국제인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청구권이 없는 인권은 존재할 수 없다. 청구권은 인권이라는 법규범을 구성하는 하나의 축으로서 소멸시킬 수 없다.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배상 청구권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일본 정부가 여러 차례 인정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와 1995년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 당시 일본 정부는 자국 국회에서 반복해 확인했다. 1991년 일본 국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청구권 문제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과 개인청구권의 소멸 여부에 대한 질의가 있었다. 당시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등은 일관되게 개인청구권은 국제법의 법리를 전제로 할 때 소멸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2018년 11월 14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도 동일하게 답변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국회서는 국제법상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소멸시킬 수 없다고 답변한 반면 한국인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개인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해결됐다고 하는 이중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본 언론도 개인청구권 문제에 침묵하고 있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 불법성을 전제했나?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와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를 전혀 전제로 하지 않았다. 한일협정은 일본의 주장대로 경제협력을 위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불법적인 식민지배가 일본에게 아킬레스건이기에 한일협정문에는 국제법상 불법행위를 모두 배제한 채 합법만을 전제로 구성했다.

그런데 한국의 일본군‘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자들 모두 일본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해결하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강제징용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인권침해를 당했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성노예 피해와 같은 극단적 인권침해를 겪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한일청구권협정 내용에는 합법이라는 전제로 그러한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 자체가 규정돼 있지 않다.

우리 대법원은 2012년과 2018년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식민지배 불법성과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명시되지 않았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 일본은 그동안 회피해온 식민지배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과 결국 맞닥뜨리게 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미소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미소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 대법원의 판단은 국제인권법에 부합하나?

오늘날 국제인권법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의 침략전쟁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극단적 침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2005년 12월 유엔총회 결의에서 만장일치로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을 채택했다. 이는 국가 간 우호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피해자 중심 접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당시 일본도 찬성했다.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 부작위 위헌 판결, 2012년 대법원 판결은 2005년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사법 판단으로서 국제인권법에 충실했다.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아베 정권의 의도는 전후 70년 아베담화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부정하고 식민지 지배 불법성과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것이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도 국가 간 우호를 위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사례다. 화해치유재단 출연금으로 상징되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피해자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성, 정의가 회복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다.

지난 3월 6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부산 출생·93) 할머니가 시사저널e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위안부가 아니다. 강제다 강제"라고 말했다. / 사진=권태현 피디
지난 3월 6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부산 출생·93) 할머니가 시사저널e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위안부가 아니다. 강제다. 강제"라고 말했다. / 사진=권태현 피디

☞이어진 인터뷰는 하(下)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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