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개발로 마찰 빚던 '제주·인천’에서 주력 언론 인수···부영 관련 비판 기사 사라져
“여론 인식한 언론사 껴안기 포석···친기업화되면 부실 시공 등 각종 비리 밝혀내기 어려워”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부영그룹은 2017년 제주와 인천 거점 언론사인 ‘한라일보’와 ‘인천일보’를 인수했다. 두 언론사의 최대주주는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이다. 언론사 인수는 공교롭게도 부영이 대규모 개발 추진 과정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역에서 이뤄졌다. 인수 이후 두 언론사의 이사진은 부영그룹 임원들로 대폭 물갈이 됐고, 부영과 관련한 비판 기사는 사라졌다. 이를 두고 부영의 언론사 인수가 사업다각화가 아닌 여론 무마용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인천일보. 부영 인수 후 논조 변화···비판 사라지고 홍보·옹호 기사 일색

부영은 2017년 4월 인천일보를 인수했다. 1988년에 창간된 인천일보는 인천광역시와 경기도에서 발간되는 수도권 유력 일간 신문이다. 인수 후 최대주주에는 지분 49%를 보유한 이중근 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또 사내이사 7명 중 3명이 부영그룹 계열사 출신이거나 겸직을 하고 있다. 인수 당시 부영은 송도 테마파크 건설과 관련해 인천시, 지역 시민단체 등과 갈등을 빚고 있었다.

송도 테마파크 개발 사업은 부영이 연수구 동춘동 911번지 일원 49만 9575㎡(옛 대우자동차판매 부지)를 유원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2008년 토지 소유주인 대우자판이 영상테마파크 조성을 추진했으나 2010년 워크아웃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부영은 2015년 해당 부지를 3150억원에 매입해 테마파크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대신 인천시는 부영에게 인접한 동춘동 907번지 일원 약 53만8000㎡를 공동주택(약 5000세대) 등으로 개발하는 도시개발사업에 대해 인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부영은 4년 넘게 테마파크 건설 관련 설계도 등 기본 절차를 이행하지 않아 지역사회에서 공분을 사고 있다. 그 사이 부영이 테마파크 대신 도시개발사업의 조기 착공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부영이 공익을 위한 테마파크 조성은 뒷전인 채, 애초부터 아파트를 분양하는 도시개발사업 이익을 위해 접근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부영은 인천일보를 인수했다. 당시 인천일보는 인천 지역 언론 중 송도테마파크와 관련해 부영을 가장 강하게 비판했던 언론사다. ▲꾸물대는 부영 ‘송도테마파크’ 의지 있나(2016년 3월), ▲‘부영그룹 송도테마파크 조성’ 조건부 수용 결정 논란(2016년 6월) ▲[사설] 송도 테마파크 특혜 의혹 불식시켜야(2016년 7월) ▲부영 노골적 주택사업···테마파크는 꼼수였나 ▲부영 ‘최순실 연루 의혹’··· 송도 테마파크는?(2016년 11월) ▲송도 테마파크 추진 부영주택, 하도급 대금 안 줘 과징금(2017년 1월) 등 다달이 부영 관련 비판기사를 쏟아냈다. 이처럼 부영은 사업다각화라는 명분으로 인천지역 최대 적군이었던 인천일보를 하루아침에 아군으로 만든 셈이다.

인수 후 인천일보의 논조는 크게 달라졌다. 송도테마파크와 관련한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인천일보에서는 더 이상 부영 비판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부영을 감싸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사설] 송도테마파크 사업은 인천발전 ’견인차‘(2017년 9월 25일)에는 “부영그룹에서 갖고 있는 좋은 이미지를 깍아내리려는 시도가 볼썽사납다. 부영은 논란을 빚었던 임대아파트의 임대료도 일부 동결하는 등 서민 주거안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사회지원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부영 소송 관련 기사, 한라일보만 빠져···“여론 인식한 언론사 이용 포석”

이 같은 패턴은 부영이 2017년 1월 인수한 한라일보에서도 나타난다. 한라일보는 제주도 내 최대 유료부수를 기록할 만큼 영향력이 막강한 언론사다. 이 회장은 인수 후 지분 49%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한라일보의 이사진도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부영그룹 계열사 임원들로 채워졌다. 3명 모두 부영그룹 계열사 임원들이다. 올 1월에는 김용구 전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한라일보 인수 당시 부영은 제주도에서 부영호텔 건립사업을 두고 지자체 및 시민·환경단체 등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부영호텔 사업은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중문관광단지 내 주상절리 해안 29만3897㎡에 1330실 규모의 객실을 갖춘 부영호텔 4개 동을 짓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제주지역의 주민과 시민·환경단체 등은 이 지역에 부영호텔을 세울 경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상절리대가 자칫 부영호텔만의 사적 재산처럼 변질될 수 있다며 반발해 왔다. 여론이 악화되자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재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지역 내에서 비판이 잇따랐지만 부영은 사업을 이어갔다. 2016년과 2017년 두 번에 걸쳐 제주도에 부영호텔 건립에 관한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개발부지 인근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주상절리대가 있고, 생태·경관·문화적 가치가 높아 경관 사유화와 환경파괴가 이뤄질 수 있다며 건축허가를 반려했다. 급기야 부영은 제주도를 상대로 건축허가 반려 소송까지 진행했지만, 지난 10일 패소했다. 제주지역 매체들은 부영의 무리한 사업 추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라일보 역시 부영에 날을 세웠던 언론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수 이후 한라일보에서는 부영을 비판하는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015년 12월 22일자 칼럼에서 부영의 경관 사유화에 대한 논란을 다루기도 했지만, 인수 이후에는 단순 보도자료가 주를 이뤘다. 특히 제주MBC, 제주일보, 제주의 소리 등 같은 지역 내 매체들은 10일 부영이 건축허가 반려 취소 소송에서 패소한 내용을 일제히 다룬 반면, 한라일보는 ‘부영아파트단지 물놀이장 눈길’이라는 기사로 대체했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부영이 여론을 인식해 언론사를 인수했다는 소문이 꾸준히 돌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부영의 언론사 인수가 지역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며 “특히 인수가 유독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와 인천에서만 이뤄졌다는 점은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부영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언론사가 친기업화되면 사주인 기업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곧바로 해당 지역 주민이나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기사를 친기업적으로 쓴다면 건설사의 경우 부실 시공이나 비리가 있어도 밝히기 어렵다”며 “원칙을 무시하는 행태를 계속 이어간다면, 제대로 하는 언론사들까지 똑같이 매도당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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