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견 차이 보이는 상황 ‘부담’···아베 정부에 대응하기 위해 합심 필요성 대두
현재로선 일본 불화수소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국산화 필요성엔 공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SK회장. / 사진=연합뉴스,SK 편집=디자이너 이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SK회장. / 사진=연합뉴스,SK 편집=디자이너 이다인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이 된 국내 반도체업계가 국내에선 일본산 불화수소를 꼭 써야 하느냐는 압박을 받는 샌드위치 상황이 됐다. 반도체업계는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면서 “현재로선 일본산 불화수소를 쓰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론 국산화를 고민할 시점”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첫 포문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열었다. 박 장관은 지난 18일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포럼에서 “국내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대기업이 안 사준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태원 SK 회장은 행사가 끝난 후 “공정에 맞는 불화수소가 나와야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그 정도까지의 디테일은 들어가지 못했다”고 국산 불화수소를 쓰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박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페이스북에 “20년 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라고 맞받아쳤다. 불화수소는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강화키로 한 품목이다.

삼성전자는 직접 이 논쟁에 끼진 않았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박 장관의 발언이 결국 업계 전체를 두고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 같은 상황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불화수소를 놓고 정부와 합심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반도체기업은 물론 우리 정부에도 모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 아베 정부에 맞서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의 합심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체는 일본산 불화수소를 쓰는 것일까. 업계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한 반도체업체 연구원은 “일본산 불화수소와 국산 불화수소의 순도 등 차이는 아주 미세한데, 그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며 “그 미세한 차이가 수율(불량률의 반대 개념)에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관련 특허도 일본이 갖고 있고, 만드는 노하우도 모르는 상황이라 일본 불화수소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반도체업계 전문가는 “국산 불화수소 제품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 기업들이 쓰지 말라고 해도 썼을 것”이라며 “일본 불화수소가 비용 면에서도 낫고 품질이 좋아 최고를 써야 하는 반도체업계 입장에선 가져다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업계에선 수율이 생명과 같다. 특히 호황기에 수율이 떨어지면 수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업계에선 이 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인다.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의 품질은 수율과 직결된다. 이 때문에 일본이 한국 기업을 압박하기 위해 불화수소를 수출규제 품목에 넣었고, 우리 정부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번 기회에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는 불화수소의 품질을 끌어올려 국산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반도체업계에선 비용 등의 측면에서 일본이 폭리를 취한다고 판단되던 부분들에 대해 착실히 국산화를 이뤄왔다고 전해진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일본 불화수소가 품질·비용 면에서 워낙 좋다 보니 90% 이상 일본산을 쓰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이 온 것도 사실”이라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번 기회에 국내 중소기업의 불화수소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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