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규제는 WTO 제소 가능성 때문에 낮지만···“통관·검역 강화 등 비관세 장벽 강화 대비해야”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강화 조치로 촉발된 한일간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이 우리 농식품 수입 규제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셔터스톡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강화 조치로 촉발된 한일간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이 우리 농식품 수입 규제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셔터스톡, 그래픽=이다인 디자이너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강화로 촉발된 한일간 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이 추가 조치로 우리 농식품의 수입 규제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직 이와 관련한 일본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지만 ‘비관세 장벽 강화’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8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촌경제연구원, 업계 등에 따르면 일본의 농산물 수입 규제 징후로 볼 수 있는 농식품 업체 피해 접수나 통관절차 변경, 검사 강화 등 특이 동향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 당시 일본 내 한국식품 불매운동이 있었고, 2004년 우리나라 채소류 수출이 급증하자 일일 검역건수 한도를 둬 통관이 지체된 적이 있어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전문가 지적이다. 

지난 9일 마이니치 신문이 외무성 간부의 말을 인용, 일본이 한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입 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마이니치는 이 외무성 간부의 구체적 신상이나 수입 규제에 대한 시기나 방법 등 세부 내용은 알리지 않아 보도의 신빙성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농식품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안보상의 이유로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해 승인을 받고 수출하겠다는 입장인데 방식은 다르더라도 한국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해 농식품 분야에 보복 조치를 안 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나라 농축식품 최대 수출국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일 농축식품 수출액은 13억2383만 달러로 전체 수출액 69억2570만 달러의 19.11%를 차지했다.

업계에서는 일본이 전면 수입제한조치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검역이나 통관절차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일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수출 소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신선도 영향을 많이 받는 채소류가 직격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진 농식품부 수출진흥과장은 “직접적 수입 중단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수 있는 사안이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승인을 늦추거나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며 “비관세 장벽을 높여서 통관을 지연시키거나 신선도를 떨어뜨려서 상품 판매율을 떨어뜨리는 건 특별한 불이익 조치를 한 것인지 구별해 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문한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식품안전성을 근거로 한 규제 가능성이 있다”며 “통관이나 검역, 검사 등을 통해 시간을 끌면 신선농산물은 품질이 저하되는 데 이런 식의 보이지 않는 제재에 나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파프리카, 대일 수출 비중 90%···대체 시장 발굴 필요성

지난해 채소류 대일 수출액은 파프리카, 김치, 토마토 등의 순으로 높았다. 이중 파프리카는 9182만달러를 수출, 전체 채소류 수출액 1억8329만 달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김치는 5610만달러, 토마토는 1335만 달러를 각각 수출했다.

문 위원은 “파프리카의 경우 우리 수출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율이 90% 가량으로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일본의 규제 가능성에 대비해 대체 시장 발굴이 필요하다”며 “토마토는 일본 비중이 50% 내외라 다른 시장으로 수출 물품을 돌릴 여력이 된다. 김치는 가공 포장해서 수출하기 때문에 파프리카나 토마토에 비해 타격이 덜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파프리카 업계는 일본의 규제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국산 파프리카의 일본 점유율이 높아 대체 불가능한 품목이라 실제 규제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산 파프리카 품질도 우수하다는 평이다. 최근 7년간 일본에 수출된 파프리카 중 통관 안정성 검사에서 문제가 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한국파프리카생산자자조회 관계자는 “일본 내 파프리카 점유율이 80% 정도로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일본이 파프리카 수입을 지연시킨다고 하면 대체할 수 있는 물량이 없다. 네덜란드, 뉴질랜드산이 있지만 이동거리가 멀고 물류비가 많이 들어 매우 비싸다”며 “(일본 수출 차질보다는) 국내 수급 불균형이 더 문제다. 일본 수출길이 막히면 국내 파프리카 공급량이 늘어나 수급조절에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이 수입 규제에 나설 경우 예상되는 피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향후 일본의 규제로 반송되거나 신선도 저하로 상품성이 떨어진 제품에 대한 보험료 지원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현지 통관자나 변호사 이용 비용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상황이 심각해지면 반송 물류비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위원은 “현재 일본 수출 규제 영향을 받는 제조업은 부품 같은 중간재로 교역하지만 농식품 분야는 최종 소비재로 교역하기 때문에 양상이 다르다”며 “다만 농식품 분야는 소비자나 국내 생산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일본의 움직임이 없더라도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대비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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