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메릴린치 허수성 주문수탁 행위에 1억7500만원 부과
일각에선 “규정 위반으로 취한 이득에 비해 처벌 수준 너무 낮아”
"자본시장 신뢰도 높이기 위해선 강력한 사후 징계 필요" 주장도
메릴린치의 허수성 주문수탁,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개인 대출 등 국내외 증권사들의 규정 위반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관계당국의 제재 강도가 약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입힌 유무형적인 피해와 그들이 깨트린 자본시장의 신뢰에 비하면 처벌 수준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각에선 좀 더 강력한 징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 16일 시장감시위원회(이하 시감위)를 열고 외국계 증권사 메릴린치의 서울지점에 대해 1억750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메릴린치의 허수성 주문수탁 사실을 적발한 지난해 12월 이후 7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시감위는 메릴린치가 미국 시타델증권의 허수성 초단타 매매를 인지하고도 창구 역할을 했다고 봤다. 시타델증권은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최우선매도호가의 잔량을 소진해 호가 공백을 만든 후 일반 매수세를 유인하고, 그다음에 주가가 오르면 보유 물량을 매도해 차익을 얻는 방식을 썼다. 이러한 방식은 430개 종목에서 총 6220회(900만주, 847억원 규모)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시감위가 시장감시규정 제4조(공정거래질서 저해 행위의 금지)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제재금을 부과한 것이다. 시장감시규정 4조에서는 시장의 공정거래 질서를 저해할 수 있는 호가를 제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더불어 회원 또는 그 임원·직원은 이러한 거래의 위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제재 수위가 낮은 것이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불만도 함께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과 투자자들이 입는 유무형적인 손실에 비해 제재금이 적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자는 이를 두고 “시장 교란을 통해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남는 장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포함한 시타델증권의 매매차익과 메릴린치의 위탁수수료 수익을 감안하면, 제재금이 이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규정에 따르면 규정 위반 시 ‘제명’ ‘10억원 이하 1000만원 이상 회원제재금 부과’ ‘경고’ ‘주의’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다. 한국거래소 측은 자체적으로 규제를 가할 수 없는 공적규제 영역을 제외하고 내부 기준에 따라 제재금을 부과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시타델증권의 허수성 주문을 통한 시세조정 혐의와 관련해선 현재 한국거래소가 아닌 금융당국이 조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증권사들의 규정 위반 사례가 연이어 나타나면서 징계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앞서 금융위는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개인 신용공여 금지 위반에 대해 과태료로 5000만원을 부과했는데, 이를 두고서도 징계 수위가 낮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해 4월 자본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증권의 배당 오류 사고의 경우 과태료가 1억4400만원으로 이 역시 ‘솜방망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골드만삭스 계열사의 무차입 공매도에서부터 메릴린치 허수성 호가 수탁까지 특히 외국계 증권사들의 규정 위반 사례가 계속 나오면서 국내 자본시장이 멍들고 있다”며 “시장 감시 강화도 중요하지만 사후적인 처벌을 좀 더 강하게 해 이러한 문제가 나오지 않게 억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