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자수첩] 法 비웃으며 美서 ‘버티는’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 김도현 기자(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19.07.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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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비서 성추행 논란 이후 작년 2월 귀국 예고···지난해 1월 가사도우미 성폭행 고발 後 와병 장기화

연예인이 고개를 숙인다. 그는 과거 물의를 일으켰다. 한동안 자숙의 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으나, 모두가 허하지 않은 자숙의 시간을 스스로 훌훌 털어내고 대중 앞에 선다. 사과의 맺음은 대게 유사하다. 연기(무대)로 보답하겠다는 식이다.

보답이라는 말이 과연 적절할까. 적어도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다면 그의 보답은 궤변이다. 적어도 보답이라 할 정도면, 다른 연예인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매우 우수한 실력을 뽐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절대 다수의 연예인들은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가 가능하다. 다른 직군들에 비해 ‘더 버는 삶’을 영위하는 연예인이 대개 그렇다.

결국 자기돈 벌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그 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마치 대중을 위함인 것처럼 둘러댄다. 일종의 클리셰로 정착했다. 탯줄을 무기로 ‘더 가진 삶’을 영위하는 재벌들도 무대만 다를 뿐 유사한 양상이다. 연예인들이 신작발표를 위해 사과를 한다면, 재벌들은 서초동 법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그들의 맺음은 ‘국가경제 이바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왠지 알 것만 같다. 그들의 진의를. 대역죄인 마냥 엄숙한 표정을 짓는다. 조금 관대하게 생각해보자. 적어도 송구스러움을 표한 부분에 있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서는. 사과는 커녕 사법당국을 비웃는 그들, 그에 비해 낫다는 의미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고발당하면 끝이지만, 경제인들은 잊힐 때까지 버티면 된다.”

돈이 왜 권력보다 좋은 지 설명해주는 간결한 문장 같다.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을 성폭행 혐의로 고발한 한 여성이 김 전 회장 자택에서 나오며 들었다고 주장하는 말의 한 토막이다. ‘서민적이고 장난을 좋아한다던’ 회장님의 짓궂음이 점차 노골적으로 변화하자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녹음기를 켰다.

사실 우린 놀라지 않았다. 여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그 때도 동영상이 공개됐고, 그의 육성을 확인했다. 그래서일까. 한 쪽의 주장이지만, 여론은 그녀를 지지하고 있다. 김 전 회장 측의 대응도 클리셰였다. ‘합의된 관계’, ‘2000만원’ 등의 단어가 포함된 해명을 내놓고 있다. 이면의 뉘앙스는 돈을 바란 그녀의 음해다.

헌법이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실현되는 땅이다. 김준기 전 회장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억울함이야 사법당국에 호소하면 될 일인데,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짓고 고소 당사자를 음해하는 뉘앙스의 해명을 내놓는다. 변호사와 회장직은 내려놨지만 본인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 관계자들을 통해 이를 흘린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 체류 중인 그는 여비서 성추행 시비 때도 와병을 이유로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이 때가 2017년 9월이었다. 당시 경찰은 인터폴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현지압송을 검토 중이라 전했다. 결과는 전무했다. 이듬해 2월 출석이 가능하다던 김 전 회장은 1년 6개월여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미국에 체류 중이다. 와병을 이유로.

이번 성폭행 혐의도 지난해 1월 접수된 내용이다. 그러고보면 2월에 오겠다던 김 전 회장의 와병을 악화시킨 것이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 맞나보다. 10년을 못가는 권력에 비해 돈은 대(代)를 이으며 금수저들을 양산한다. 비록 열흘도 채 못 갔지만 그간은 화려했을 그 꽃잎이 졌다는 이유로 부정하고 있다.

꽃잎처럼 붉은 색으로 표기되던 오늘 위로 검은색이 덧칠해진지도 벌써 12년이 흘렀다. 깜빡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해한다. 그래도 기억하자. 오늘은 제헌절이다. 우리 땅 위에 헌법이 제정된 그런 날이다.

비록 축적된 부(富)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더라도, 적어도 법아래 모두가 평등한 그런 사회를 생각해보게 된다. 더불어 한국과 미국의 의료수준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아픈지 차라리 그런 해명을 듣고 싶어지는 날이다.

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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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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